최초의 신체시는 <고목가>이며, 자유시도 아니다

  주근옥

 주근옥 저, 한국시 변동과정의 모더니티에 관한 연구, 시문학사, 2001. 참조

두산세계대백과사전에서 신체시에 관련된 부분을 발췌해 보면 아래와 같다. 여기서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가 있다.

1. 신체시의 명칭 : 신체시 또는 신시라고 한다
2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최초의 신체시인데, 그 형식이 창가와 자유시 사이의 준정형시라는 설과, 완전한 자유시라고 하는 설이 있다.
3.. 서구의 정형시에서는 시의 한 단위가 보(步:foot)와 행(行:line)으로 이루어지나, 자유시형은 그것이 연(聯:stanza)으로 된다.
4. 그리고 이승만의 <고목가>가 최초의 신체시라고 하는 일설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명칭의 경우 신체시로 호칭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신시는 어휘장의 관점에서 볼 때 상위어(superordinate)이며, 신체시는 하위어(subordinate)이기 때문이다. 즉, 신시로는 전통시 이외의 찬송가 창가 신체시 등을 총칭하는 것이며, 신체시는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해에게서 소년에게>서는 한 마디로 서구 정형시 7행연(Seven-line Stenza)의 모방이다. 모아 쓴 음절을 한 개의 meter로 본다면, 하나의 stanza는 다음과 같이 된다.

1행 : Tetrameter(4음보)
2행 : Trimeter(3음보)
3행 : Tetrameter(4음보)
4행 : Trimeter(3음보)
5행 : Pentameter(5음보)
6행 : Trimeter(3음보)
7행 : Pentameter(5음보)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Tetrameter(4음보)
따린다, 부슨다, 문허바린다,                             
Trimeter(3음보)
泰山갓흔 놉흔뫼, 딥태갓흔 바위ㅅ돌이나,                 
Tetrameter(4음보)
요것이 무어야, 요게무어야,                              
Trimeter(3음보)
나의큰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까디하면서,           
Pentameter(5음보)
따린다, 부슨다, 문허바린다,                             
Trimeter(3음보)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Pentameter(5음보)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Tetrameter(4음보)
내게는, 아모것, 두려움업서,                             
Trimeter(3음보)
陸上에서, 아모런, 힘과權을 부리던者라도,                
Tetrameter(4음보)
내압헤 와서는 꼼딱 못하고,                              
Trimeter(3음보)
아모리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디 못하네.                
Pentameter(5음보)
내게는 내게는 나의압헤는.                               
Trimeter(3음보)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Pentameter(5음보)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Tetrameter(4음보)
나에게, 뎔하디, 아니한者가,                             
Trimeter(3음보)
只今디, 업거던, 통긔하고 나서보아라.                  
Tetrameter(4음보)
秦始皇, 나팔륜, 너의들이냐,                             
Trimeter(3음보)
누구누구 누구냐 너의亦是 내게는 굽히도다,               
Pentameter(5음보)
나허구 겨르리 잇건오나라                                
Trimeter(3음보)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Pentameter(5음보)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Tetrameter(4음보)
됴고만 山모를 依支하거나,                               
Trimeter(3음보)
됴ㅅ쌀갓흔 뎍은섬, 손ㅅ벽만한 을까리고,               
Tetrameter(4음보)
고속에 잇서서 영악한톄를,                               
Trimeter(3음보)
부리면서, 나혼댜 거룩하다 하난 者                       
Pentameter(5음보)
이리둄 오나라, 나를 보아라.                             
Trimeter(3음보)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Pentameter(5음보)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Tetrameter(4음보)
나의 될이는 한아잇도다,                               
Trimeter(3음보)
크고길고, 널으게 뒤덥흔바 뎌푸른하날,                   
Tetrameter(4음보)
뎌것은 우리와 틀님이업서,                               
Trimeter(3음보)
뎍은是非 뎍은쌈 온갓모든 더러운 것업도다.               
Pentameter(5음보)
됴위 世上에 됴사람텨럼,                               
Trimeter(3음보)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Pentameter(5음보)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Tetrameter(4음보)
뎌世上 뎌사람 모다미우나,                               
Trimeter(3음보)
그中에서 한아 사랑하난 일이잇스니,                    
Tetrameter(4음보)
膽크고 純情한 少年輩들이,                               
Trimeter(3음보)
才弄텨럼, 貴엽게 나의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Pentameter(5음보)
오나라 少年輩 입맛텨듀마.                               
Trimeter(3음보)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Pentameter(5음보)

-소년, 1908

 

해에게서 소년에게  


신체시의 표층구조와 기원에 관한 一考


물론 한국어는 foot가 없기 때문에 Iambus(약강조)와 같은 것을 모방할 수 없다. 그러나 meter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그 정형성을 모방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고찰하고 보면, 신체시는 자유시 내지는 준정형시(자유시에 가까운)이어야 한다고 하는 명제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문학사에서 신체시 개념이 삭제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신체시의 개념은 자유시가 아니라 <한국의 전통 시형식 vs 한국의 전통시 이외의 시형식>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통 시형식이 아니면 정형시든지 자유시든지 상관이 없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신타이시(新體詩) 경우에도 이러한 관점에서 서구의 시형식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토야마 마사카즈(外山正一)가 쓴 신타이시쇼우(新體詩抄)의 서문을 보면,
<와카(和歌)가 길은 것은 그 體 또는 5·7 또는 7·5이고, 과연 이 책에 실은 것도 7·5는 7·5라고 해도 古來의 법칙에 구속받지 않고 동시에 그 외의 여러 가지 新體를 求하려고 하며 따라서 이것을 신타이시(新體詩)라고도 함/ 이 책 중의 詩가 모두 句(verse, 여기서는 詩의 一行을 의미) 節(stanzer)을 구별해서 쓴 것은 西歐의 詩集의 예를 따름>이라고 쓰여 있다. 실제로 그가 쓴 신타이시의 형식도 7·5조의 운율을 지키면서도 서구의 시형식을 모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拔刀隊

 

     ゝ山仙士(ちゆざんせんし)

 

我ハ官軍我敵ハ 天地容れざる朝敵ぞ       

敵の大将たる者ハ 古今無双の英雄で

之に従ふ兵ハ 共に慓悍決死の士

鬼神に恥ぬ勇あるも 天の許さぬ叛逆を

起しゝ者ハ昔より 栄えし例あらざるぞ

敵の亡ぶる夫迄ハ 進めや進め諸共に

玉ちる剣抜き連れて 死ぬる覚悟で進むべし


皇国の風と武士の 其身を護る霊の

維新このかた廃れたる 日本刀の今更に

又世に出づる身の誉 敵も身方も諸共に

刃の下に死ぬぺきぞ 大和魂ある者の

死ぬべき時ハ今なるぞ 人に後れて恥かくな

敵の亡ぶる夫迄ハ 進めや進め諸共に

玉ちる剣抜き連れて 死ぬる覚悟で進むべし


首を望めバ剣なり 右も左りも皆剣

剣の山に登らんハ 未来の事と聞きつるに

此世に於てまのあたり 剣の山に登るのも

我身のなせる罪業を 滅す為にあらずして

賊を征伐するが為 剣の山もなんのその

敵の亡ぷる夫迄は 進めや進め諸共に

玉ちる剣抜き連れて 死ぬる覚悟で進むべし


剣の光ひらめくハ 雲間に見ゆる稲妻か

四方に打出す砲声ハ 天に轟く雷か

敵の刃に伏す者や 丸に砕けて玉の緒の

絶えて墓なく失する身の 屍ハ積みて山をなし

其血ハ流れて川をなす 死地に入るのも君が為

敵の亡ぶる夫迄ハ 進めや進め諸共に

玉ちる剣抜き連れて 死ぬる覚悟で進むべし


弾丸雨飛の間にも 二ツなき身を惜まずに

進む我身ハ野嵐に 吹かれて消ゆる白露の

墓なき最後とぐるとも 忠義の為に死ぬる身の

死て甲斐あるものならバ 死ぬるも更に怨なし

我と思ハん人たちハ 一歩も後へ引くなかれ

敵の亡ぶる夫迄ハ 進めや進め諸共に

玉ちる剣抜き連れて 死ぬる覚悟で進むべし


我今茲に死ん身ハ 君の為なり国の為

捨つべきものハ命なり 仮令ひ屍ハ朽ちぬとも

忠義の為に捨る身の 名ハ芳しく後の世に

永く伝へて残るらん 武士と生れた甲斐もなく

義もなき犬と云ハるゝな 卑怯者となそしられそ

敵の亡ぶる夫迄ハ 進めや進め諸共に

玉ちる剣抜き連れて 死ぬる覚悟で進むべし

 


 ばっとうたい

 

 ゝ山仙士(ちゆざんせんし, 外山正一, とやままさかず, 1848~1900)

 

われはかんぐんわがてきは てんちいれざるちょうてきぞ

てきのたいしょうたるものは ここんむそうのえいゆうで

これにしたがうつわものは ともにひょうかんけっしのし

きしんにはじぬゆうあるも てんのゆるさぬはんぎゃくを

おこししものはむかしより さかえしためしあらざるぞ

てきのほろぶるそれまでは すすめやすすめもろともに

たまちるつるぎぬきつれて しぬるかくごですすむべし


みくにのふうともののふの そのみをまもるたましいの

いしんこのかたすたれたる にっぽんとうのいまさらに

またよにいづるみのほまれ てきもみかたももろともに

やいばのしたにしぬぺきぞ やまとたましいあるものの

しぬべきときはいまなるぞ ひとにおくれてはじかくな

てきのほろぶるそれまでは すすめやすすめもろともに

たまちるつるぎぬきつれて しぬるかくごですすむべし


くびをのぞめばつるぎなり みぎもひだりもみなつるぎ

つるぎのやまにのぼらんは みらいのこととききつるに

このよにおいてまのあたり つるぎのやまにのぼるのも

わがみのなせるざいごうを ほろぼすためにあらずして

ぞくをせいばつするがため つるぎのやまもなんのその

てきのほろぷるそれまでは すすめやすすめもろともに

たまちるつるぎぬきつれて しぬるかくごですすむべし


つるぎのひかりひらめくは くもまにみゆるいなずまか

よもにうちだすほうせいは あまにとどろくいかずちか

てきのやいばにふすものや たまにくだけてたまのおの

たえてはかなくうするみの かばねはつみてやまをなし

そのちはながれてかわをなす しちにいるものもきみがため

てきのほろぶるそれまでは すすめやすすめもろともに

たまちるつるぎぬきつれて しぬるかくごですすむべし


だんがんうひのあいだにも ふたつなきみをおしまずに

すすむわがみはのあらしに ふかれてきゆるしらつゆの

はかなきさいごをとぐるとも ちゅうぎのためにしするみの

ししてかいあるものなれば しぬるもさらにうらみなし

われとおもはんひとたちはいっぼもあとへひくなかれ

てきのほろぶるそれまでは すすめやすすめもろともに

たまちるつるぎぬきつれて しぬるかくごですすむべし


われいまここにしぬんみは きみのされなりくにのため

すつべきものはいのちなり たとひしかばねはくちるとも

ちゅうぎのためにすてるみの なはこうばしくのちのよに

ながくつたへてのこるらん ぶしとうまれたかいもなく

ぎもなきいぬといわるるな ひきょうものとなそしられそ

てきのほろぶるそれまでは すすめやすすめもろともに

たまちるつるぎぬきつれて しぬるかくごですすむべし

 

 

발도대

 

ゝ山仙士(ちゆざんせんし, 外山正一, とやままさかず, 1848~1900, 철학자/교육자/시인)

주근옥 역

 

우리는 관군 우리의 적은 천지에 침범 못할 천황의 적       

적의 대장이라고 하는 자는 고금무쌍의 영웅으로서

그를 따르는 병사들은 모두 날렵하고 사나우며 죽음을 각오한 무사

귀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용기가 있어도, 하늘이 용서하지 않는 반역을

일으키는 자는 옛날부터 영예를 얻은 예가 없는 것을

적이 죽는 그때까지 전진 또 전진 다 함께

빛나는 칼을 빼어 들고 죽을 각오로 전진해야만 하느니


황국의 모습과 무사는 그 몸을 수호하는 영혼이

유신 이래 쇠퇴하게 되었고, 일본도가 새삼 

다시 세상에 나타나는 그 모습의 명예, 적도 아군도 모두 함께

칼날 아래 죽어야만 하는 것을, 일본정신이 있는 자의

죽어야만 하는 때는 지금인 것을, 남에게 뒤져서 창피를 당하지마라

적이 죽는 그때까지 전진 또 전진 다 함께

빛나는 칼을 빼어 들고 죽을 각오로 전진해야만 하느니


목을 원한다면 칼이로구나, 왼쪽도 오른쪽도 모두 칼

칼의 산에 오르는 것은 미래의 일이라고 들었었는데

이 세상에서 직접 칼의 산에 오르는 것도

내 몸에 저지른 죄업을 멸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적을 정벌하기 위한 것, 칼의 산도 아무것도 아니야

적이 죽는 그때까지 전진 또 전진 다 함께

빛나는 칼을 빼어 들고 죽을 각오로 전진해야만 하느니


칼의 번뜩임은 구름 사이로 보이는 번개인가

사방에서 솟아오르는 포성은 하늘로 울려 퍼지는 천둥소린가

적의 칼날에 쓰러지는 자여 칼날에 부서져 목숨이

끊어지고 묘도 없이 죽는 몸의 시체는 싸여서 산이 되고

그 피는 흘러서 강물을 이룬다. 사지로 들어가는 것도 천황을 위해

적이 죽는 그때까지 전진 또 전진 다 함께

빛나는 칼을 빼어 들고 죽을 각오로 전진해야만 하느니


탄환이 비 오듯 쏟아지는 사이에서도 둘도 없는 몸을 아낌없이

전진하는 이 몸은 폭풍에 휘몰려 사라지는 백로의

묘도 없는 최후를 마친다고 해도 충의를 위해 죽는 몸이

죽어서 보람 있는 것이 된다면 죽는 것도 결코 원한이 없어

내가 해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마라

적이 죽는 그때까지 전진 또 전진 다 함께

빛나는 칼을 빼어 들고 죽을 각오로 전진해야만 하느니


지금 이곳에서 죽으려고 하는 몸은 천황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 것 

버려야 하는 것은 목숨이며 가령 시체는 썩을지라도

충의를 위해 죽는 몸의 이름은 향기롭게 후세에

오래도록 전해 남을 것이니, 무사로 태어난 보람도 없이

의리도 없는 개라고 일컬어지지 마라 비겁자로 비난 받지 마라

적이 죽는 그때까지 전진 또 전진 다 함께

빛나는 칼을 빼어 들고 죽을 각오로 전진해야만 하느니

拔刀隊


신타이시 서문


그리고 백과사전의 내용을 쓴 분이 누군가 모르지만 foot(한국어의 경우에는 성조에 해당할 것이지만 이 성조가 중세에 소멸하고 경상도 일부에만 남아있다), meter, rhyme, stanza의 개념을 다시 한번 독해하셨으면 하는 생각이며, 자유시는 연형식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상관없이 2행시에서 14행 소네트와 같은 정형에서 벗어난 운률의 시를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신체시의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승만의 <고목가>가 최초의 신체시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시는 번역 찬송가를 모방하여 만든 시로서 정형시이지만, 이 정형성이 한국 전통시의 형식이 아니라 서구 4행시(short meter)를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이상 언급한다는 것은 지면상 문제가 있으므로 필자의 졸저 <한국시 변동과정의 모더니티에 관한 연구(시문학사, 2001), pp. 361-418>의 내용을 참고하기 바란다.

슬프다/뎌나무/다늙엇네          3보격(Trimetre)

병들고/썩어셔/반만셧네          3보격(Trimetre)

심악한/비바람/이리져리/급히쳐   4보격(Tetrametre)

몃백년/큰남기/오날위태        3보격(Trimetre)

 

원수에/땃작새/밋흘쫏네          3보격(Trimetre)

미욱한/뎌새야/쫏지마라          3보격(Trimetre)

쫏고또/쫏다가/고목이/부러지면   4보격(Tetrametre)

네쳐자/네몸은/어대의지          3보격(Trimetre)

 

버틔셰/버퇴셰/뎌고목을          3보격(Trimetre)

부리만/굿박여/반근되면          3보격(Trimetre)

새가지/새입히/다시영화/불되면   4보격(Tetrametre)

강근이/자란후/풍우불외          3보격(Trimetre)

 

쏘하라/뎌포수/땃작새를          3보격(Trimetre)

원수에/뎌미물/남글쪼아          3보격(Trimetre)

비바람/을도아/위망을/재촉하야   4보격(Tetrametre)/

너머지게/하니/엇지할고          3보격(Trimetre)


    
-<고목가>(이승만) -short meter(협성회보 1898)

 

한복디/잇사니/멀고멀에          3보격(Trimetre)

거긔셩/인의빗/날빗같해      3보격(Trimetre)

찬양하/는소래/구셰쥬를/위하야   4보격(Tetrametre)

텬당에/가득함/쉬지않네          3보격(Trimetre)

- 「有福之地」, 「찬양가」 초판(H. G. Underwood 편,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1894) 제109장


*Short Metre: 제1행, 제2행, 제4행이 약강조 3보격이고, 제3행만이 약강조 4보격인 형식이다. 리듬 도식은 abab 혹은 abcb가 많다. 이 형식은 찬송가에 많이 쓰인다.

 

찬양가 109장 "有福之地" 악보



*


"해에게서 소년에게"에대한 백과사전 편자의 견해

신체시 [新體詩]
카테고리
· 문화예술 > 문학 > 한국문학 > 시
· 지역 > 아시아 > 한국 > 한국일반
개요
한국의 신문학 초창기에 쓰여진 새로운 형태의 시가(詩歌).
본문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신시’라고도 한다. 그 전의 창가(唱歌)와 이후의 자유시 사이에 위치하는 것으로, 종래의 고가(古歌)인 시조나 가사와는 달리 당대의 속어(俗語)를 사용하고, 서유럽의 근대시나 일본의 신체시의 영향을 받은 한국 근대시의 초기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신체시의 효시는 1908년 11월 《소년(少年)》 창간호에 실린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의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를 꼽으나, 이에 앞서 1905년 무렵 작자 미상의 신체시 《아양구첩(峨洋九疊)》 《원백설(怨白雪)》 《충혼소한(忠魂訴恨)》이 발표되었고, 1896년(1898년임-주근옥) 이승만(李承晩)이 《협성회보(協成會報)》에 《고목가(枯木歌)》라는 신체시를 발표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육당의 일련의 신체시를 그 형태상으로 보면 대개 7 ·5조의 자수율(字數律)로서 이루어 놓은 정형시이다. 즉, 신체시는 창가적 정형성과 후렴이 있으나, 고전시가의 율문적(律文的) 표현을 지닌
준정형시(準定型詩)라고 볼 수 있다.

 

*


해에게서 소년에게
카테고리
· 문화예술 > 문학 > 한국문학 > 시
· 역사와 지리 > 역사 > 한국사 > 조선시대
· 지역 > 아시아 > 한국 > 한국일반
개요
최남선의 시.
저자 : 최남선
장르 : 시
발표 : 1908년
본문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1908년 《소년》지 창간호 권두에 실린 작품으로 당시의 사람들은 '신체시(新體詩)' 또는 '신시(新詩)'라고 불렀다. 4·4조나 7·5조, 또는 6·5조 등의 창가 형식을 깨뜨리고
완전한 자유시의 형태로 등장했다는 데에 문학사적 의의가 크다. 한국 근대시의 최초의 모습으로 평가되는 그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 텨-ㄹ썩,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따린다, 부슨다, 문허바린다/태산(泰山) 갓흔 놉흔 뫼, 집채 갓흔 바윗돌이나/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나의 큰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까지 하면서/따린다, 부슨다, 문허 바린다/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신시와 신체시의 호칭 문제

그 명칭은 崔南善 자신도 혼용하고 있는 터인데, 19101930년대에 걸쳐 간혹 신문이나 잡지에서도 이들 용어가 혼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명칭 가운데 신시는 주로 趙潤濟, 鄭漢模, 金基鉉 등이, ‘신체시란 명칭은 白鐵, 趙演鉉, 趙芝薰, 金東旭, 金학東 등이 사용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鄭漢模만이 용어에 대한 확정의도를 강렬히 들어내고 있을 뿐 다른 분들은 이들 용어에 대한 반성이나 검토 없이 단순히 새로운의 범칭적 용어로 사용해왔을 뿐이다. 특히 鄭漢模신시로 확정 사용할 것을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六堂의 신시와 일본의 신타이시(新體詩) 사이에는 유사한 점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그들의 차이점도 크다. 오히려 六堂의 신시가 일본의 신타이시(新體詩)보다 내적으로 다양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六堂舊作三篇의 창작 동기를 말한 後記에서 작가 자신이 이런 일련의 시를 신시로 규정하고 있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신시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셋째, ‘신체시는 일본의 명칭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므로 그것과 구별하기 위하여도 신시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를 따라가다가 보면 감히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려운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론의 입장에서 잠시 벗어나 학문이라는 특별한 논리의 입장에 서서 보면 조금은 관점의 차이가 있음을 간과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언어학적 입장 또는 의미론적 입장에서는 그의 견해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물이라는 의미는 야생동물가축을 포함하고 가축은 다시 을 포함하며 소는 다시 황소암소를 포함한다. 이것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동물

         ∧

     가축 야생동물

      ∧

    소 양

    ∧

황소 암소

 

여기서 가축과 야생동물은 동물의 직접 하위성분이 되고 소와 양은 가축의 하위성분이 된다. 언어의 기능을 추상기능에 중심을 두고 설명하는 것도 이와 같이 어휘체계에는 상위개념과 하위개념간에 유기적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최하위의 단계까지 내려가면 언어는 없어지고 사물 혹은 사실만 남게 된다. 이러한 의미의 계층적 대립관계를 A. Korzybski(18791950)는 추상의 사닥다리(abstract ladder)로 나타내고, 의미를 설명하는 경우에는 되도록 추상의 단계를 한 단계씩 낮추어 줄 것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유기적 관계를 상하관계(hyponymy)라고 하며, 이는 어휘소의 의미에 대한 계층적 구조로서 한 쪽이 의미상 다른 한 쪽을 포섭하거나 포섭되는 관계를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시신체시의 성분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新詩 [+시간][+내포성][+상위][-공간]

新體詩 [+시간][+외연성][+하위][+공간]

 

상하관계는 함의(entailment)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신체시신시를 의미적으로 함의한다. 그러나 그 역인 신시신체시를 함의하지는 않는다. 이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은 일방함의(unilaterall entailment)의 관계가 성립됨을 알 수 있다.

 

(新體詩) 하위어 상위어 (新詩)

             

 

곧 하위어(subordinate)는 상위어(superordinate)를 함의하지만 역으로 상위어는 함의하지 않는다. 이를 의미성분과 관련지으면 상위어는 하위어보다 의미성분이 적음을 알 수 있다.

 

新詩의 의미성분 [+시간][+내포성][+상위][-공간] 3

新體詩의 의미성분 [+시간][+외연성][+하위][+공간] 4

 

신체시는 신시에 없는 음절 가 하나 더 있을 뿐 아니라 의미의 성분으로는 [+공간]을 가지게 된다. 아무튼 의미성분의 수가 적은 쪽이 상위가 되고, 많은 쪽이 하위어가 된다. 또한 의미성분의 수가 같은 경우는 [-하위어]가 된다. 결국 의미성분의 수가 많은 하위어는 구체적 특수적이며, 의미성분의 수가 적은 상위어는 추상적 일반적이므로, 구체적이고 특수한 사항이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사항을 함의하게 되는 것이다.

의미성분을 분석해 본 결과 신시신체시의 변별성이 분명히 드러났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신시를 장르의 명칭으로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분들의 논리에도 일면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식적이고 일반론적인 관점보다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학문의 관점에서 신체시를 사용하는 것이 좀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본에서 토야마 마사카즈(外山正一), 야타베 료우키치(矢田部良吉), 이노우에 테츠지로우(井上哲次郞)신타이시쇼우(新體詩抄, 明治 15=1882)”라는 타이틀로 서구시를 소개한 경우를 상기하면, 어쩐지 개운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차피 서구시의 직접 수용이 아니고 일본을 통해서 간접 수용이 이루어진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고 보면 학문적인 논리를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굳이 신체시라는 명칭을 일본과 동일하게 사용하기 싫다면, 일본의 경우에는 원음 그대로 신타이시(しんたいし、新體詩)라 호칭하고, 한국의 경우에는 신체시로 발음하면 그만이다.

 

한국시의 분류

 

 주근옥 저, 한국시 변동과정의 모더니티에 관한 연구, 시문학사, 2001. 참조


 
*


자유시 [自由詩, free verse]
카테고리
· 문화예술 > 문학 > 문학일반 > 시일반
개요
형태상으로 정형시(定型詩)와 상대적인 입장에 서는 것으로서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표현으로 작자의 감정이 표현된 시.
본문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정형시에서는 시의 한 단위가 보(步:foot)와 행(行:line)으로 이루어지나, 자유시형은 그것이 연(聯:stanza)으로 된다. 따라서 보다 산문에 가까운 산문시도 자유시의 일종으로 볼 수 있으나, 대개는 이를 구별하여 인용한다. 자유시의 형식은 그 기원을 멀리는 성서의 《아가(雅歌)》에서 찾을 수 있고, 가까이는 프랑스의 보들레르가 산문시 《파리의 우울:Spleen de Paris》(1869) 서문에서 자유시 정신을 부르짖음으로써 출발하였다. 자유시가 정형시의 성립조건에서 탈피한 이유는 근대정신이 운율의 법칙이나 일정한 어수(語數)의 틀 속에 갇혀 있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민중의 생활과 그 율동을 함께 하기 위한 때문이었다.

또한 자유시가 대두한 다른 하나의 직접적인 계기는 음악성을 부정하는 점에 있었다. 그러나 리듬을 전혀 배제하는 것은 아니고, 언어가 지니는 음의 의미를 통해서 형성되는 이미지의 예술성이 그 생명을 이룬다.
(이것은 자유시론이 아니라 산문시론임. 자유시론과 산문시론을 혼동하고 있다. 아래의 "자유시 고찰(T. S. Eliot)," "에즈라 파운드의 이미지스트 시학," "서구시의 기본운율," 보들레르의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 서문 “아르젠느 우세에게”를 참조하라-주근옥) 이를 가리켜 불규칙의 리듬, 곧 자유율(自由律) 혹은 내재율(內在律)이라고 일컫는다.

각주(주근옥); 자유시와 산문시의 이러한 혼동은(둘이 엄격히 변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키타가와 후유히코(北川冬彦) 등의 엉터리 주장을 확인 없이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다.  

새로운 산문시로의 길(北川冬彦)


한국의 근대문학사에 있어 자유시의 첫 작품은 대개 1919년 《창조》지(誌)에 발표된 주요한(朱耀翰)의 <불놀이>를 꼽는다. 그러나 1918년 11월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에 발표된 김억(金億)의 <봄>과 <봄은 간다> 등 두 작품은 이미 자유시의 형태를 이룬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1918년 무렵부터 한국의 현대시(現代詩)는 자유시의 영역으로 들어서기 시작하였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초창기 한국 문단에서 자유시를 창작한 주요 시인으로는 김억 ·주요한 ·남궁 벽(南宮璧) ·홍사용(洪思容) ·이상화(李相和) ·김소월(金素月) ·한용운(韓龍雲) ·김동환(金東煥) 등이 있다.

 
 주근옥 저, 한국시 변동과정의 모더니티에 관한 연구, 시문학사, 2001. 참조

*

自由詩
自由詩의 발상자는 신체시다. 자유시 以前의 在한 西詩는 音數 體裁 등에 관한 複雜한 怪難한 法則에 지배되어 있다. 알렉산드리안調의 12綴音의 法則과 같은 그 현저한 例다. 이것은 ‘一行一段落制’라 할 法則이 없다. 이 法則에서 一行에 包하는 意味는 次行에 及치 않음을 그 原則으로 하였다. 곧 그 行行이 各各 ‘意味獨立’을 保치 않아도 안되었다. 이런 不自由의 外的 專制律이 詩人의 自由奔放의 情想을 抱束 압박하여 왔다. 近傾 우리의 흔히 듣는 ‘인쟌부(enjambement; 앙장부망)’이란 語는 이 時代의 土産語品이다. 곧 彼 法則에 反對시는 ‘안쟌부’이라고 呼하였기 때문이다. 이 專制詩形에 反抗하여 立한 者는 곧 自由詩다. 자유시는 그 律의 根底를 個性에 置하였다. …近日 歐美와 日本에서 自由詩의 이름이 生함은 三富朽葉(みとみきょうよう, 1889-1917)의 자유시 운동으로부터 始한다.
律이라 함은 이 自由詩의 或 性律을 이름이다. 이 律名에 至하여는 사람에게 의하여 各各  個 內容律, 或 內在律, 或 內心律, 혹 內律, 心律이라 呼한다. 그러나 이는 모두 自由詩 곧 個性律을 形容하는 同一意味 말이다. 나는 此等 種種의 名을 包括하여 單히 ‘靈律’이라 칭하려 합니다. ―黃錫禹, “朝鮮詩壇의 發足點과 自由詩,”「每日申報」, 1919. 11. 10., 韓啓傳,「韓國現代詩論硏究」(서울: 일지사, 1983), p. 32에서 재인용.

자유시 고찰(T. S. Eliot)


에즈라 파운드의 사상주의(이세순)  


서구시의 기본운율


*황석우(黃錫禹, 1895~1960): 호 상아탑(象牙塔). 서울 출생.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정경과 중퇴. 재학 중 일본의 상징주의 시인 미키 로후[三木露風]의 영향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 귀국 후 김억(金億)·오상순(吳相淳) 등과 《폐허(廢墟)》 동인이 되어 《애인의 인도(引渡)》 《벽모(碧毛)의 묘(猫)》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다. 《장미촌(薔薇村)》 《조선시단(朝鮮詩壇)》 등의 시지(詩誌)를 주재했고, 중외일보(中外日報) ·조선일보의 기자로도 활약했다. 시의 주조(主調)는 퇴폐적인 경향이 강했고 1920년대 초기에는 오상순·홍사용(洪思容)·변영로(卞榮魯)·주요한(朱耀翰) 등과 더불어 선구적 시인으로 활약했으나 곧 시단에서 은퇴하였다. 1958년부터 다시 시를 발표했으나 반응을 얻지 못했고, 만년에는 국민(國民)대학의 교무처장을 지냈다. 시집으로는 1929년에 간행한 《자연송(自然頌)》이 있다.

*三富朽葉(みとみ きょうよう), *朽葉のヨミを「くちは」とするものもある。
1889. 8. 14(明治22)~1917. 8. 2(大正6). 長崎県壱岐出身。本名は義臣。道臣・マツ(共に同墓)の長男。父は壱岐石田郡長を務めた人物。 1896(M29)4月、7歳の時に渡良村の三富本家の伯父三富浄の戸籍上養子となるも、同月、実父母と共に上京した。
 フランス系列の暁星中学校に入学し、このころから「新小説」「文庫」などに短歌や詩を投稿した。早稲田大学高等予科文学科に入学し、西条八十らと雑誌「深夜」を発行。1908(M41)早稲田大学英文科へ進学。 '09人見東明、加藤介春、今井白楊、福田夕咲らと「自由詩社」を結成し、口語自由詩を唱道した。象徴主義の影響を受けた倦怠的・耽美的な詩を、機関誌「自然と印象」、「早稲田文学」等に発表し、その口語散文詩は、先駆的作品として評価された。 '10頃からマラルメやランボー、ヴェルハーレンなど19世紀末のフランス近代詩人の影響を受け、フランス象徴派詩人の研究や翻訳を行なった。 '17(T6)あと12日で28歳の誕生日を迎えることにになったであろうその年の夏の日、詩友の今井白楊と避暑のため訪れた三富家別荘のある犬吠岬崖下、君ヶ浜で遊泳中、高波にさらわれ今井白楊と共に溺死した。
 没後、'18実父の三富道臣により哀切の文字を刻んだ「涙痕之碑」が千葉県銚子市犬吠崎君ケ浜灯台下に建立された。また、'26文学の友であった増田篤夫によって編まれた遺稿集『三富朽葉詩集』が発表された。この詩集は三部立てになっており、「第一詩集」は、自由詩社結成後2年あまりの間に発表した作品が主。第二詩集「營み」は象徴詩人の面目が色濃く現した。第三詩集「生活表」は、象徴主義の深さを感じさせる散文詩が収められており、口語散文詩の先駆といわれた。

*

  아르젠느 우세에게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 서문

  C. Baudelaire / 윤영애 역

  나의 친애하는 친구여, 나는 당신에게 조그만 작품 하나를 보내오. 이 작품에 대해 그것이 머리도 꼬리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왜냐면 반대로 이 작품 속에서는 모든 것이 동시에 머리요, 꼬리이니까요. 또는 거꾸로 동시에 꼬리요, 머리이기도 하니까요. 이 같은 결합이 우리들 모두에게,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독자에게도 얼마나 훌륭한 편의를 주는지 제발 주시(注視)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곳 아무데서나 중단할 수 있지요. 나는 나의 상념을, 당신은 당신의 원고를, 독자는 그의 독서를 말입니다. 왜냐면 나는 이 작품의 완강한 의지를 필요 없는 복잡한 줄거리의 끝없는 연속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거기서 골격 하나를 제거해 보십시오. 그러면 이내 이 구불구불한 환상의 두 조각은 무리 없이 서로 연결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그것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보십시오. 그러면 그 조각들은 각자 따로 훌륭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잘린 토막들 중 어떤 것들은 그 자체로 충분히 활기가 있어 당신의 마음에 들고, 당신을 즐겁게 해주리라는 기대와 함께 나는 감히 뱀 전체를 감히 당신에게 바치는 바입니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조그만 고백 하나를 해야겠소. 알로이시우스 베르트랑(Aloysius Bertrand)의 유명한 「밤의 교활한 사나이(Gaspard de la Nuit)」―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들의 친구들 중 몇몇이 알고 있는 이 책은 <유명하다>고 불릴 충분한 권리를 갖고 있지 않을까요?―를 적어도 스무 번은 뒤적이던 중, 그것과 유사한 어떤 것을 시도해 보겠다는 생각이 나에게 떠오른 것입니다. 아주 묘하게도 회화적인 옛날 생활의 그림에 그가 적응시킨 방법을 현대생활의, 아니 차라리 더욱 추상적인 현대의 어떤 생활의 묘사에 적응시켜보자는 의도 말입니다.
  우리들 중 누가 한창 야심만만한 시절, 이 같은 꿈을 꾸어보지 않은 자가 있겠습니까?
리듬과 각운(脚韻)이 없으면서도 충분히 음악적이며, 영혼의 서정적 움직임과 상념의 물결침과 의식의 경련에 걸맞을 만큼 충분히 유연하면서 동시에 거친 어떤 시적(詩的) 산문의 기적의 꿈을 말이오.
  이같이 집요한 이상이 태어난 것은 대도시(大都市)들을 자주 드나들며 이들 도시의 무수한 관계에 부딪치면서부터입니다. 나의 친애하는 친구, 당신 자신에게도 째지는 뜻한 <유리장수>의 소리를 샹송으로 번역해 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았었나요? 이 소리가 거리의 가장 높은 안개를 가로질러 다락방에까지 보내는 모든 서글픈 암시들을 서정적 산문으로 표현해 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았던가요?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나의 시샘이 결국 나에게 행복을 안겨 주지 못하고 말지 않았나 겁이 나는군요.  이 작업을 시작하자 곧 나는 내가 나의 신비하고 찬란한 모델과 아주 동떨어질 뿐만 아니라 내가 그것과는 묘하게 다른 어떤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이런 유의 예기치 못한 사고는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면 그 사실에 의기양양하겠지만, 그가 하려고 계획했던 것을 정확하게 이행하는 것이 시인의 가장 큰 영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의 자존심을 깊이 모욕할 뿐인 사고입니다.

  경구(敬具)
  보들레르

  개와 향수병
(산문시)

  -C. Baudelaire / 윤영애 역

  「나의 사랑스런 강아지야, 착한 강아지야, 내 귀여운 뚜뚜, 이리 와서 이 멋있는 향수 냄새를 맡아 보렴. 시내의 가장 좋은 향수가게에서 산 것이란다.」
  그러자 개는 꼬리를 흔들며―꼬리를 흔드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이 보잘 것 없는 것들에게는 웃음과 미소에 해당하는 몸짓인 것이다― 다가와서 마개를 연 병에 그의 축축한 코를 조심스럽게 내민다. 그러더니 갑자기 공포에 질려 뒷걸음치며 나를 향해 비난의 몸짓으로 짖어댄다.
  「―아! 별 수 없는 개라니, 만일 내가 너에게 배설물 한 상자를 주었다면 기분 좋게 그 냄새를 맡고 어쩌면 그것을 다 먹어치웠을지도 모를 텐데. 그러니 나의 슬픈 생애의 동반자로는 자격이 없는 너 역시 대중을 닮은 거로군. 대중에게는 절대로 품위 있는 향수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들을 짜증나게 할 뿐이지. 조심스럽게 선택한 오물이나 주면 되는 것이다.」  


산문시; rhyme, endrhyme, metre, foot, 중간휴지 등의 운율이 사용되지 않은 시
자유시; rhyme, metre, foot, 중간휴지 등의 운율을 공식적인 형식에 따르지 않고 개인이 자유롭게 사용한 운율시


 
 주근옥 저, 한국시 변동과정의 모더니티에 관한 연구, 시문학사, 200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