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체시는 서구시의 영향을 받은 이 무시무시한 일본의 신타이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ゝ山仙士(ちゆざんせんし) / 주근옥 역

 

(한맥문학 통권 227호 2009. 07. 25)

 

我ハ官軍我敵ハ 天地容れざる朝敵ぞ       

敵の大将たる者ハ 古今無双の英雄で

之に従ふ兵ハ 共に慓悍決死の士

鬼神に恥ぬ勇あるも 天の許さぬ叛逆を

起しゝ者ハ昔より 栄えし例あらざるぞ

敵の亡ぶる夫迄ハ 進めや進め諸共に

玉ちる剣抜き連れて 死ぬる覚悟で進むべし


皇国の風と武士の 其身を護る霊の

維新このかた廃れたる 日本刀の今更に

又世に出づる身の誉 敵も身方も諸共に

刃の下に死ぬぺきぞ 大和魂ある者の

死ぬべき時ハ今なるぞ 人に後れて恥かくな

敵の亡ぶる夫迄ハ 進めや進め諸共に

玉ちる剣抜き連れて 死ぬる覚悟で進むべし


首を望めバ剣なり 右も左りも皆剣

剣の山に登らんハ 未来の事と聞きつるに

此世に於てまのあたり 剣の山に登るのも

我身のなせる罪業を 滅す為にあらずして

賊を征伐するが為 剣の山もなんのその

敵の亡ぷる夫迄は 進めや進め諸共に

玉ちる剣抜き連れて 死ぬる覚悟で進むべし


剣の光ひらめくハ 雲間に見ゆる稲妻か

四方に打出す砲声ハ 天に轟く雷か

敵の刃に伏す者や 丸に砕けて玉の緒の

絶えて墓なく失する身の 屍ハ積みて山をなし

其血ハ流れて川をなす 死地に入るのも君が為

敵の亡ぶる夫迄ハ 進めや進め諸共に

玉ちる剣抜き連れて 死ぬる覚悟で進むべし


弾丸雨飛の間にも 二ツなき身を惜まずに

進む我身ハ野嵐に 吹かれて消ゆる白露の

墓なき最後とぐるとも 忠義の為に死ぬる身の

死て甲斐あるものならバ 死ぬるも更に怨なし

我と思ハん人たちハ 一歩も後へ引くなかれ

敵の亡ぶる夫迄ハ 進めや進め諸共に

玉ちる剣抜き連れて 死ぬる覚悟で進むべし


我今茲に死ん身ハ 君の為なり国の為

捨つべきものハ命なり 仮令ひ屍ハ朽ちぬとも

忠義の為に捨る身の 名ハ芳しく後の世に

永く伝へて残るらん 武士と生れた甲斐もなく

義もなき犬と云ハるゝな 卑怯者となそしられそ

敵の亡ぶる夫迄ハ 進めや進め諸共に

玉ちる剣抜き連れて 死ぬる覚悟で進むべし

 


 ばっとうたい

 

 ゝ山仙士(ちゆざんせんし, 外山正一, とやままさかず, 1848~1900)

 

われはかんぐんわがてきは てんちいれざるちょうてきぞ

てきのたいしょうたるものは ここんむそうのえいゆうで

これにしたがうつわものは ともにひょうかんけっしのし

きしんにはじぬゆうあるも てんのゆるさぬはんぎゃくを

おこししものはむかしより さかえしためしあらざるぞ

てきのほろぶるそれまでは すすめやすすめもろともに

たまちるつるぎぬきつれて しぬるかくごですすむべし


みくにのふうともののふの そのみをまもるたましいの

いしんこのかたすたれたる にっぽんとうのいまさらに

またよにいづるみのほまれ てきもみかたももろともに

やいばのしたにしぬぺきぞ やまとたましいあるものの

しぬべきときはいまなるぞ ひとにおくれてはじかくな

てきのほろぶるそれまでは すすめやすすめもろともに

たまちるつるぎぬきつれて しぬるかくごですすむべし


くびをのぞめばつるぎなり みぎもひだりもみなつるぎ

つるぎのやまにのぼらんは みらいのこととききつるに

このよにおいてまのあたり つるぎのやまにのぼるのも

わがみのなせるざいごうを ほろぼすためにあらずして

ぞくをせいばつするがため つるぎのやまもなんのその

てきのほろぷるそれまでは すすめやすすめもろともに

たまちるつるぎぬきつれて しぬるかくごですすむべし


つるぎのひかりひらめくは くもまにみゆるいなずまか

よもにうちだすほうせいは あまにとどろくいかずちか

てきのやいばにふすものや たまにくだけてたまのおの

たえてはかなくうするみの かばねはつみてやまをなし

そのちはながれてかわをなす しちにいるものもきみがため

てきのほろぶるそれまでは すすめやすすめもろともに

たまちるつるぎぬきつれて しぬるかくごですすむべし


だんがんうひのあいだにも ふたつなきみをおしまずに

すすむわがみはのあらしに ふかれてきゆるしらつゆの

はかなきさいごをとぐるとも ちゅうぎのためにしするみの

ししてかいあるものなれば しぬるもさらにうらみなし

われとおもはんひとたちは  いっぼもあとへひくなかれ

てきのほろぶるそれまでは すすめやすすめもろともに

たまちるつるぎぬきつれて しぬるかくごですすむべし


われいまここにしぬんみは きみのされなりくにのため

すつべきものはいのちなり たとひしかばねはくちるとも

ちゅうぎのためにすてるみの なはこうばしくのちのよに

ながくつたへてのこるらん ぶしとうまれたかいもなく

ぎもなきいぬといわるるな ひきょうものとなそしられそ

てきのほろぶるそれまでは すすめやすすめもろともに

たまちるつるぎぬきつれて しぬるかくごですすむべし

 

 

발도대

 

ゝ山仙士(ちゆざんせんし, 外山正一, とやままさかず, 1848~1900, 철학자/교육자/시인)

주근옥 역

 

우리는 관군 우리의 적은 천지에 침범 못할 천황의 적       

적의 대장이라고 하는 자는 고금무쌍의 영웅으로서

그를 따르는 병사들은 모두 날렵하고 사나우며 죽음을 각오한 무사

귀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용기가 있어도, 하늘이 용서하지 않는 반역을

일으키는 자는 옛날부터 영예를 얻은 예가 없는 것을

적이 죽는 그때까지 전진 또 전진 다 함께

빛나는 칼을 빼어 들고 죽을 각오로 전진해야만 하느니


황국의 모습과 무사는 그 몸을 수호하는 영혼이

유신 이래 쇠퇴하게 되었고, 일본도가 새삼 

다시 세상에 나타나는 그 모습의 명예, 적도 아군도 모두 함께

칼날 아래 죽어야만 하는 것을, 일본정신이 있는 자의

죽어야만 하는 때는 지금인 것을, 남에게 뒤져서 창피를 당하지마라

적이 죽는 그때까지 전진 또 전진 다 함께

빛나는 칼을 빼어 들고 죽을 각오로 전진해야만 하느니


목을 원한다면 칼이로구나, 왼쪽도 오른쪽도 모두 칼

칼의 산에 오르는 것은 미래의 일이라고 들었었는데

이 세상에서 직접 칼의 산에 오르는 것도

내 몸에 저지른 죄업을 멸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적을 정벌하기 위한 것, 칼의 산도 아무것도 아니야

적이 죽는 그때까지 전진 또 전진 다 함께

빛나는 칼을 빼어 들고 죽을 각오로 전진해야만 하느니


칼의 번뜩임은 구름 사이로 보이는 번개인가

사방에서 솟아오르는 포성은 하늘로 울려 퍼지는 천둥소린가

적의 칼날에 쓰러지는 자여 칼날에 부서져 목숨이

끊어지고 묘도 없이 죽는 몸의 시체는 싸여서 산이 되고

그 피는 흘러서 강물을 이룬다. 사지로 들어가는 것도 천황을 위해

적이 죽는 그때까지 전진 또 전진 다 함께

빛나는 칼을 빼어 들고 죽을 각오로 전진해야만 하느니


탄환이 비 오듯 쏟아지는 사이에서도 둘도 없는 몸을 아낌없이

전진하는 이 몸은 폭풍에 휘몰려 사라지는 백로의

묘도 없는 최후를 마친다고 해도 충의를 위해 죽는 몸이

죽어서 보람 있는 것이 된다면 죽는 것도 결코 원한이 없어

내가 해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마라

적이 죽는 그때까지 전진 또 전진 다 함께

빛나는 칼을 빼어 들고 죽을 각오로 전진해야만 하느니


지금 이곳에서 죽으려고 하는 몸은 천황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 것 

버려야 하는 것은 목숨이며 가령 시체는 썩을지라도

충의를 위해 죽는 몸의 이름은 향기롭게 후세에

오래도록 전해 남을 것이니, 무사로 태어난 보람도 없이

의리도 없는 개라고 일컬어지지 마라 비겁자로 비난 받지 마라

적이 죽는 그때까지 전진 또 전진 다 함께

빛나는 칼을 빼어 들고 죽을 각오로 전진해야만 하느니

              

 

병의 지휘

 

っとうたい는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조곡 카르멘(Carmen)" 표절?

 

拔刀隊(ばっとうたい)

한국시 변동과정의 모더니티에 관한 연구(2001, 시문학사)

 

 

 ゝ山仙士(ちゆざんせんし, 外山正一, とやままさかず, 1848~1900, 철학자/교육자/시인

 

 1. 최남선(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이 모방한 시는 外山正一(とやま まさかず)가 미국 유학 시 알게 된 남북전쟁 당시의 군가의 형태를 답습하고 있다. 일본에 와있던 육군군악대 교관 프랑스인 샤를르 루르(Charles Edouard Gabriel Leroux, 1851. 9. 13~1926. 7. 4)에 의해 작곡돼, 일본 최초의 군가로서 폭발적으로 히트했다. 이곡은 「扶桑歌」「分列行進曲」으로도 불려지며, 구 육군으로부터 현재의 자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는 곡이다.

 2. 발도대(抜刀隊, 明治 18년(1885): 征韓論을 주장한 사이고 타카모리(西鄕隆盛, さいごう たかもり, 1827~1877)가 이끄는 무사집단과 정부군사이에 일어난 전쟁을 서남전쟁(西南戰爭, せいなんせんそう、明治10년[1877년] 3월4일~20일의 17일간)이라 하며, 이 전쟁에서 사이고의 사쓰마(薩摩) 지겐류(示現流) 용사들에 의해 정부군의 총포대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자 급히 조직한 검사 결사대이다. 나중에는 육군소로 개칭되었다가 폐지되었다. 사쓰마(薩摩) 지겐류(示現流)는 오직 일격필살만을 중시하는 검류로써, 일격에 적의 검을 파괴하고 적을 부수는 파워를 보여주며 猿叫 즉 원숭이의 절규를 모방한 “케이!(キェーイ!),” “체스토!(チェスト!)” 등의 독특한 기합이 중시되는 검파이다.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 1561~1643)는 지겐류(示現流)의 개조(開祖)로도 유명하지만, 지겐류(示現流) 창시 과정에서 나타난 그의 노력과 열정도 대단하다. 지겐류(示現流)는 일본에서 최강으로 꼽히는 검술 중의 하나로, 사쓰마 번(薩摩藩, 오늘날의 가고시마)의 무사들만이 썼던 고류검술이다. 지겐류(示現流)와 사쓰마(薩摩)는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한 근대화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해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 사이고 타카모리(西鄕隆盛, さいごう たかもり, 1827~1877)

 
    * 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ふくざわ ゆきち ,  1835~1901)


   昭和59年(1984)부터 1만엔 권의 초상이 등장하여, 그 얼굴은 일본의 얼굴로,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858년 에도(江戶: 현재의 도쿄)에 네덜란드 어학교인 난학숙(蘭學塾)을 열고, 1860년 이후 바쿠후(幕府) 견외사절(遣外使節)로 3회에 걸쳐 해외를 여행하며 새로운 문물을 접하였다. 1868년 학숙을 이전하면서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로 개칭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게이오기주쿠대학의 기원이 되었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후 신정부의 초빙을 사양하고 교육과 언론활동에만 전념하였다. 1873년 메이로쿠사(明六社)를 창설한 후로는 동인으로 활약하면서 실학(實學)을 장려하였으며, 부국강병을 주장하여 자본주의 발달의 사상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1882년 《시사신보》를 창간하였고, 만년에는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하여 크게 공헌하였다. 저서에는 《서양사정》(1866) 《학문의 권유》(1872) 《문명론의 개략》(1875) 등 후쿠자와 3부작을 비롯하여 《복옹자전(福翁自傳)》 《신여대학(新女大學)》 등이 있다.  

 
   유길준(兪吉濬, 1856~1914)

   본관 기계(杞溪). 자 성무(聖武). 호 구당(矩堂). 서울 출생. 1881년(고종 18) 일본에 건너가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 입학했다가 1882년 귀국, 1883년 외무랑관(外務郞官)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한 뒤 주미 전권대사 민영익(閔泳翊)을 수행하여 도미(渡美), 보스턴대학을 다녔다. 1885년 유럽 여러 나라를 시찰하고 돌아온 뒤 개화당으로 몰려 구금되었다. 구금기간에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1895년에 탈고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외무참의(外務參議) 등을 지내고, 1895년 김홍집(金弘集) 내각의 내무협판(內務協辦)을 역임, 1896년 내부대신에 올랐으나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내각이 해산되자 일본에 망명했다가 1907년 순종황제의 특사로 귀국했다.
   그 후 흥사단(興士團)에 참여하여 활동했고 국민경제회(國民經濟會)를 설립했으며 계산학교(桂山學校)를 설립했다. 1910년 대한제국(大韓帝國)의 훈1등 태극대수장(勳一等太極大綬章)을 받았다. 국권피탈 후 일본정부에서 남작(男爵)을 주었으나 거절했다. 저서에 《보로사국 후례대익 대왕 7년전사(普魯士國厚禮大益大王七年戰史)》 《영법로토 제국 가리미아전사(英法露土諸國哥利米亞戰史)》 《노동야학독본(勞動夜學讀本)》 《대한문전(大韓文典)》 《구당시초(矩堂詩鈔)》 《구당선생집(矩堂先生集)》 《세계대세편(世界大勢編)》 《정치학(政治學)》 《평화광복책(平和光復策)》 《이태리 독립전사(伊太利獨立戰史)》 《파란쇠망전사(波蘭衰亡戰史)》 《구당서간집(矩堂書簡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