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魚(なまうお)の切目(きりめ)の塩(しお)や秋の風(날생선의 칼자국 소금이여 가을바람)松江重頼(まつえしげより)

 

  일본의 신타이시(新體詩) “拔刀隊(주근옥 역)”

  발도대(抜刀隊):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 사이고 타카모리(西鄕隆盛, さいごう たかもり, 1827~1877)가 이끄는 무사집단과 정부군사이에 일어난 전쟁을 세이난 전쟁(西南戰爭, 明治10년[1877년] 3월4일~20일의 17일간)이라 하며, 이 전쟁에서 사이고의 사쓰마(薩摩) 지겐류(示現流) 용사들에 의해 정부군의 총포대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자 급히 조직한 검사부대입니다. 나중에는 육군소로 개칭되었다가 폐지되었습니다.
  사쓰마(薩摩) 지겐류(示現流)는 오직 일격필살만을 중시하는 검류로써, 일격에 적의 검을 파괴하고 적을 부수는 파워를 보여주며 원규(猿叫) 즉 원숭이의 절규를 모방한 “케이!(キェーイ!)”“체스토!(チェスト!)” 등의 독특한 기합이 중시되는 검파입니다.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 1561~1643)는 지겐류(示現流)의 개조(開祖)로도 유명합니다만, 지겐류(示現流) 창시 과정에서 나타난 그의 노력과 열정도 대단합니다. 지겐류(示現流)는 일본에서 최강으로 꼽히는 검술 가운데 하나로, 사쓰마 번(薩摩藩, 오늘날의 가고시마)의 무사들만이 썼던 고류검술입니다. 지겐류(示現流)와 사쓰마(薩摩)는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한 근대화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해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지겐류(示現流)는 현재 가고시마현(옛 사쓰마)의 토고우씨 종가에 대대로 전수되고 있습니다.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는 1561년 사쓰마(薩摩)에서 태어나 1643년까지 살았습니다.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의 아버지는 사쓰마(薩摩)의 영주인 시마즈 요시히사(島津 義久, しまづ よしひさ) 가문의 가신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는 어린시절 타치류(太刀流, たちりゅう)라는 검술을 익혀, 그 비전까지 몽땅 전수받아 아버지를 이어 시마즈 가문의 가신으로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삶을 바꿔놓은 것은 영주 시마즈 요시히사(島津 義久, しまづ よしひさ)를 따라 교토를 방문했을 때 만난 한 사람의 스님입니다. 교토에서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는 萬松山(ばんしょうざん)의 텐네이지(天寧寺)라는 절의 선승인 젠키츠 화상(善吉和尙, ぜんきつおしょう)을 만납니다. (젠키츠는 스님이지만 천진정자현류[天真正自顕流, てんしんしょうじけんりゅう]라는 검술의 달인이었습니다) 젠키츠는 청소용 빗자루를 들고 천진정자현류의 기본 동작중 몇 가지를 보여줍니다.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는 그 동작만 보고 천진정자현류의 매력에 빠져 가르쳐달라고 조르기 시작합니다. 젠키츠는 처음에는 겸손히, 다음은 완곡히, 그 후로는 매몰차게 거절하며 두 사람 사이의 두 달에 걸친 실랑이는 시작됩니다. 60일째 되던 날,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는 문 옆에다가 목검을 숨겨두고 젠키츠를 만나러 들어갔습니다. 물론, 젠키츠는 매몰차게 거절했습니다.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는 포기하고 돌아가는 척 하며 나가다가 숨겨둔 목검으로 마중 나오는 젠키츠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물론, 천진정자현류의 달인답게 검기가 섞인 호통을 쳤고,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는 검기에 눌려 나자빠졌다고 합니다. 60일간의 끈질긴 간청, 그리고, 목검을 들고 달려들 정도의 절박한 심정, 이런 것들이 젠키츠를 감동시킨 것일까요? 젠키츠는 목검사건 이후,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에게 입문을 허락했습니다. 당시,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는 28살, 젠키츠는 22살이었습니다. 그러나,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는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젠키츠에게 스승의 예를 다하며 배웠습니다. 한편,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는 시마즈의 가신이었기 때문에, 영주 시마즈가 교토에 있는 6개월 동안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도장에서 천진정자현류를 수련했고, 6개월 만에 모든 기술을 전수받고 사쓰마(薩摩)로 되돌아갑니다.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집 마당에 있는 나무를 상대로 혼자서 수련과 연구를 거듭합니다. 전해지는 바로는, 너무나 수련을 열심히 한 나머지, 마당의 나무들이 모조리 맞아서 말라죽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나서, 그는 젠키츠로부터 배운 천진정자현류에 자신의 검술인 타치류(太刀流, たちりゅう), 그리고 3년간의 연구와 수련에서 얻은 교훈을 합쳐 자신만의 검술을 창안합니다. 그것이 일본 근대화의 키를 쥐고 시대를 좌지우지했던 사쓰마(薩摩)의 검술, 지겐류(示現流)입니다. 물론, 창안당시 지겐류(示現流)는 신흥 검술이었고, 당시의 사쓰마(薩摩) 공식 검술은 타치류(太刀流)였기 때문에 대립은 필연이었씁니다.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는 타치류(太刀流, たちりゅう) 검객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지겐류(示現流)의 우수성을 과시합니다. 사쓰마(薩摩) 18대 당주인 시마즈 요시히사(島津 義久, しまづ よしひさ)는 지시를 내려 타치류(太刀流) 검술사범과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를 대련하게 합니다.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는 이 대련에서 승리하고, 그의 이름은 사쓰마(薩摩) 전역에서 유명해집니다. 이후,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는 시마즈 요시히사의 무술사범으로 임명되고, 지겐류(示現流)는 사쓰마(薩摩)의 공식 검술이 됨과 동시에, 사쓰마(薩摩) 내에서 타류 검술의 수련이 금지됩니다. 지겐류(示現流)의 강력함은 역사 도처에 나타납니다. 무진전쟁(戊辰戦争) 당시, 4천명의 사쓰마(薩摩) 무사단은 2만명의 막부군을 괴멸시킵니다. 신선조(新選組)의 초대 국장 곤도 이사미(近藤勇, こんどう いさみ)는 조원들에게 “지겐류(示現流)의 첫공격은 받아치거나 막을 생각하지 말고, 일단 피하고 봐라.”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세이난전쟁(西南戰爭)에서도 칼 한자루 들고 돌격해 들어가는 지겐류(示現流) 발도대에 총포로 무장한 관군이 전멸하기도 합니다.
  
메이지 정부가 검술의 중요성을 깨닫고 검술 발도대(抜刀隊)를 조직해 투입할 때까지, 관군은 패전만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사쓰마(薩摩) 무사가 베었는지 아닌지는 시체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 머리부터 배꼽아래까지 두 동강이 났을 경우. 둘째, 머리에 검의 쇠테가 박혔을 경우(검을 두 동강이 내면서 쇠테가 머리에 박혔다고 합니다)
  이렇게 역사가 증명하는 최강의 지겐류(示現流)이지만, 실제 지겐류(示現流)의 내용을 들춰보면 별거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겐류(示現流)의 기술은 오직 한 가지, 정면 베기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한 가지 기술로 한번에 내리쳐서 상대를 가른다는 것이 지겐류(示現流)의 전부입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이 생기지요. 한번에 내리칠 때 피했다가 다음 순간에 공격하면? 답은 상상하시는 대로입니다. 지겐류(示現流) 무사의 죽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첫 공격을 피하기가 무지하게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첫 번째는 검을 휘두르는 속도입니다. 지겐류(示現流)의 수련자는 통나무를 대상으로 내리치기를 하루에 1만 번씩 연습합니다. 지겐류(示現流)의 달인이 되면 통나무에서 연기가 난다고 합니다. 그런 내리치기 연습을 통해 초신속 내리치기 기술이 생겨납니다. .지겐류(示現流)를 만나면 상대가 내리치기를 한다는 것도, 그것만 피하면 된다는 것도 알지만, 번개 같은 속도로 내리치는 칼을 피할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또, 자신의 검으로 막으려 해도, 워낙 속도가 빠르고 힘이 세서 칼마저 두 동강이 냅니다. 그러니, 칼이나 방패가 있어봐야 도움이 안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투지입니다. 지겐류(示現流)는 다른 유파와 달리 인간의 투쟁본능을 중요시 여깁니다. 지겐류(示現流) 무사에게 검은 마음을 다스리거나 활인검의 매개체가 아니라, 투지에 불타는 한 마리 짐승으로서의 투쟁본능을 최대한 이끌어 내기위한 도구인 것입니다. 기합에 있어서도, 다른 유파가 “얍!,”“도!”등의 기합을 쓰는데 비해, 지겐류(示現流)는 “체스토!(チェスト!)”라는 절규를 기합으로 사용합니다. “체스토!(チェスト!)”라는 말은 사쓰마(薩摩)의 방언으로, 뜻은 분명하지 않지만, 원규(猿叫)를 모방한 소리라고도 하고, 일부에서는 “죽어라!”라는 뜻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격한 투지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지겐류(示現流)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다음 두 가지 뿐입니다. “첫 공격을 의심하지 않고 삼천지옥(三千地獄)까지 베라.” “온 힘을 다해 상대를 쳐죽여라, 첫 공격에 상대를 베지 못하면 온몸을 집어던져 죽인다.” 지겐류(示現流)의 정신을 잘 나타내는 예화가 있어 소개합니다.(사실,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에 관해서는 소개할 예화가 이것밖에 없습니다.) 한번은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가 제자들과 함께 쉬고 있는데 들개 짖어대는 소리에 시끄러워서 쉴 수가 없었습니다. “에잇! 시끄러! 얘들아! 가서 베어버려라!” 제자 두 명이 나갔고, 잠시 후 들개 짖는 소리는 멈췄습니다. 제자들이 들어와 자기들이 첫 공격에 들개를 일도양단(한칼에 두 동강이 냄)하면서도 땅에서 약간 위에 세울 정도로 칼을 잘 조절할 수 있었다고 스승에게 자랑했습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 갑자기 칼을 뽑아 바둑판을 쳤습니다. 칼은 바둑판을 두 동강이 내고 바닥을 가르고 바닥 버팀목의 절반을 베고 박혔습니다. 토고우 츄우이(東鄕重位, とうごう ちゅうい)는 제자들을 야리보면서, “이것이 우리 유파의 의지다.” 한마디를 했다고 합니다. 온힘으로 내리치면서도 땅위에서 검을 세우는 것은 다른 유파에서는 대단한 기술입니다. 그러나, 지겐류(示現流)에서는 아니었습니다. 지겐류(示現流)의 가르침 대로면, “가르다가 땅이 나오면 땅도 베어버려라.”는 것이 됩니다. 제자들은 그때 삼천지옥까지 벤다는 것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합니다.



  
사이고 타카모리(西鄕隆盛, さいごう たかもり, 1827~1877)

   —이하 관리자가 조사 정리

 
  유신삼걸(維新三傑), 즉 사쓰마 번(薩摩藩)의 西郷隆盛(さいごう たかもり)와 大久保利通(おおくぼ としみち), 죠주 번(長州藩)의 木戸孝允(きど たかよし) 세 사람 중의 한 사람. 통칭 吉之助(きちのすけ)라 불렸으며 號는 南洲이다. 사쓰마 번의 하급번사(下級藩士) 출신이다.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齊彬, しまづ なりあきら)의 인정을 받아, 국사(國事)에 참여하여 열중하였다. 제2차 죠주정벌 이후, 막부 타도운동의 지도자가 되어, 사쓰마와 죠주 동맹(薩長同盟)에 진력(盡力)하였으며 대총독부(大總督府) 참모로서 정동군(征東軍)을 지휘하고 동진(東進)하여, 에도성(江戶城)에 무혈 입성하였다. 유신(維新) 후, 참의(參議)에 올랐으며, 그 후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세이난 전쟁(西南戰爭)에서 패하여 시로야마(城山, しろやま)에서 자살하였다.


西鄕隆盛          大久保利通       木戸孝允

抜刀隊


ゝ山仙士(ちゆざんせんし)

 

 


我ハ官軍我敵ハ 天地容れざる朝敵ぞ        
敵の大将たる者ハ 古今無双の英雄で
之に従ふ兵ハ 共に慓悍決死の士
鬼神に恥ぬ勇あるも 天の許さぬ叛逆を
起しゝ者ハ昔より 栄えし例あらざるぞ
敵の亡ぶる夫迄ハ 進めや進め諸共に
玉ちる剣抜き連れて 死ぬる覚悟で進むべし

皇国の風と武士の 其身を護る霊の
維新このかた廃れたる 日本刀の今更に
又世に出づる身の誉 敵も身方も諸共に
刃の下に死ぬぺきぞ 大和魂ある者の
死ぬべき時ハ今なるぞ 人に後れて恥かくな
敵の亡ぶる夫迄ハ 進めや進め諸共に
玉ちる剣抜き連れて 死ぬる覚悟で進むべし

首を望めバ剣なり 右も左りも皆剣
剣の山に登らんハ 未来の事と聞きつるに
此世に於てまのあたり 剣の山に登るのも
我身のなせる罪業を 滅す為にあらずして
賊を征伐するが為 剣の山もなんのその
敵の亡ぷる夫迄は 進めや進め諸共に
玉ちる剣抜き連れて 死ぬる覚悟で進むべし

剣の光ひらめくハ 雲間に見ゆる稲妻か
四方に打出す砲声ハ 天に轟く雷か
敵の刃に伏す者や 丸に砕けて玉の緒の
絶えて墓なく失する身の 屍ハ積みて山をなし
其血ハ流れて川をなす 死地に入るのも君が為
敵の亡ぶる夫迄ハ 進めや進め諸共に
玉ちる剣抜き連れて 死ぬる覚悟で進むべし

弾丸雨飛の間にも 二ツなき身を惜まずに
進む我身ハ野嵐に 吹かれて消ゆる白露の
墓なき最後とぐるとも 忠義の為に死ぬる身の
死て甲斐あるものならバ 死ぬるも更に怨なし
我と思ハん人たちハ 一歩も後へ引くなかれ
敵の亡ぶる夫迄ハ 進めや進め諸共に
玉ちる剣抜き連れて 死ぬる覚悟で進むべし

我今茲に死ん身ハ 君の為なり国の為
捨つべきものハ命なり 仮令ひ屍ハ朽ちぬとも
忠義の為に捨る身の 名ハ芳しく後の世に
永く伝へて残るらん 武士と生れた甲斐もなく
義もなき犬と云ハるゝな 卑怯者となそしられそ
敵の亡ぶる夫迄ハ 進めや進め諸共に
玉ちる剣抜き連れて 死ぬる覚悟で進むべし


ばっとうたい


ゝ山仙士(ちゆざんせんし, 外山正一, とやままさかず, 1848~1900)

われはかんぐんわがてきは てんちいれざるちょうてきぞ
てきのたいしょうたるものは ここんむそうのえいゆうで
これにしたがうつわものは ともにひょうかんけっしのし
きしんにはじぬゆうあるも てんのゆるさぬはんぎゃくを
おこししものはむかしより さかえしためしあらざるぞ
てきのほろぶるそれまでは すすめやすすめもろともに
たまちるつるぎぬきつれて しぬるかくごですすむべし

みくにのふうともののふの そのみをまもるたましいの
いしんこのかたすたれたる にっぽんとうのいまさらに
またよにいづるみのほまれ てきもみかたももろともに
やいばのしたにしぬぺきぞ やまとたましいあるものの
しぬべきときはいまなるぞ ひとにおくれてはじかくな
てきのほろぶるそれまでは すすめやすすめもろともに
たまちるつるぎぬきつれて しぬるかくごですすむべし

くびをのぞめばつるぎなり みぎもひだりもみなつるぎ
つるぎのやまにのぼらんは みらいのこととききつるに
このよにおいてまのあたり つるぎのやまにのぼるのも
わがみのなせるざいごうを ほろぼすためにあらずして
ぞくをせいばつするがため つるぎのやまもなんのその
てきのほろぷるそれまでは すすめやすすめもろともに
たまちるつるぎぬきつれて しぬるかくごですすむべし

つるぎのひかりひらめくは くもまにみゆるいなずまか
よもにうちだすほうせいは あまにとどろくいかずちか
てきのやいばにふすものや たまにくだけてたまのおの
たえてはかなくうするみの かばねはつみてやまをなし
そのちはながれてかわをなす しちにいるものもきみがため
てきのほろぶるそれまでは すすめやすすめもろともに
たまちるつるぎぬきつれて しぬるかくごですすむべし

だんがんうひのあいだにも ふたつなきみをおしまずに
すすむわがみはのあらしに ふかれてきゆるしらつゆの
はかなきさいごをとぐるとも ちゅうぎのためにしするみの
ししてかいあるものなれば しぬるもさらにうらみなし
われとおもはんひとたちはいっぼもあとへひくなかれ
てきのほろぶるそれまでは すすめやすすめもろともに
たまちるつるぎぬきつれて しぬるかくごですすむべし

われいまここにしぬんみは きみのされなりくにのため
すつべきものはいのちなり たとひしかばねはくちるとも
ちゅうぎのためにすてるみの なはこうばしくのちのよに
ながくつたへてのこるらん ぶしとうまれたかいもなく
ぎもなきいぬといわるるな ひきょうものとなそしられそ
てきのほろぶるそれまでは すすめやすすめもろともに
たまちるつるぎぬきつれて しぬるかくごですすむべし

발도대


ゝ山仙士(ちゆざんせんし, 外山正一, とやままさかず, 1848~1900, 철학자/교육자/시인)
주근옥 역

우리는 관군 우리의 적은 천지에 침범 못할 천황의 적        
적의 대장이라고 하는 자는 고금무쌍의 영웅으로서
그를 따르는 병사들은 모두 날렵하고 사나우며 죽음을 각오한 무사
귀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용기가 있어도, 하늘이 용서하지 않는 반역을
일으키는 자는 옛날부터 영예를 얻은 예가 없는 것을
적이 죽는 그때까지 전진 또 전진 다 함께
빛나는 칼을 빼어 들고 죽을 각오로 전진해야만 하느니

황국의 모습과 무사는 그 몸을 수호하는 영혼이
유신 이래 쇠퇴하게 되었고, 일본도가 새삼  
다시 세상에 나타나는 그 모습의 명예, 적도 아군도 모두 함께
칼날 아래 죽어야만 하는 것을, 일본정신이 있는 자의
죽어야만 하는 때는 지금인 것을, 남에게 뒤져서 창피를 당하지마라
적이 죽는 그때까지 전진 또 전진 다 함께
빛나는 칼을 빼어 들고 죽을 각오로 전진해야만 하느니

목을 원한다면 칼이로구나, 왼쪽도 오른쪽도 모두 칼
칼의 산에 오르는 것은 미래의 일이라고 들었었는데
이 세상에서 직접 칼의 산에 오르는 것도
내 몸에 저지른 죄업을 멸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적을 정벌하기 위한 것, 칼의 산도 아무것도 아니야
적이 죽는 그때까지 전진 또 전진 다 함께
빛나는 칼을 빼어 들고 죽을 각오로 전진해야만 하느니

칼의 번뜩임은 구름 사이로 보이는 번개인가
사방에서 솟아오르는 포성은 하늘로 울려 퍼지는 천둥소린가
적의 칼날에 쓰러지는 자여 칼날에 부서져 목숨이
끊어지고 묘도 없이 죽는 몸의 시체는 싸여서 산이 되고
그 피는 흘러서 강물을 이룬다. 사지로 들어가는 것도 천황을 위해
적이 죽는 그때까지 전진 또 전진 다 함께
빛나는 칼을 빼어 들고 죽을 각오로 전진해야만 하느니

탄환이 비 오듯 쏟아지는 사이에서도 둘도 없는 몸을 아낌없이
전진하는 이 몸은 폭풍에 휘몰려 사라지는 백로의
묘도 없는 최후를 마친다고 해도 충의를 위해 죽는 몸이
죽어서 보람 있는 것이 된다면 죽는 것도 결코 원한이 없어
내가 해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마라
적이 죽는 그때까지 전진 또 전진 다 함께
빛나는 칼을 빼어 들고 죽을 각오로 전진해야만 하느니

지금 이곳에서 죽으려고 하는 몸은 천황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 것  
버려야 하는 것은 목숨이며 가령 시체는 썩을지라도
충의를 위해 죽는 몸의 이름은 향기롭게 후세에
오래도록 전해 남을 것이니, 무사로 태어난 보람도 없이
의리도 없는 개라고 일컬어지지 마라 비겁자로 비난 받지 마라
적이 죽는 그때까지 전진 또 전진 다 함께
빛나는 칼을 빼어 들고 죽을 각오로 전진해야만 하느니


참고 링크:
http://www.d1.dion.ne.jp/~j_kihira/band/midi/batto.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