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절집 번개와 장미꽃 저자 후기(새미, 1998)

      
     소절집 발문
(주근옥의 제3시집, 새미, 1998. 04. 30)
     (한맥문학 통권 297호, 2015. 05. 25. 6월호. 보정본)
     (푸른문학 통권 6호, 2017. 06. 03. 여름호. 재게재)

 

주근옥

 

  1

소절(素節)이 小節 아니고 素節인 것은 時調가 詩調 아닌 것과 같다. 素節의 素는 生素 또는 素秋를 의미하며, 깨끗한 절개와 평소의 행실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한국시에 있어서 새로운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이 시 형식에 명명하게 된 이 명칭은 이러한 사전적 의미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素節은 기본적으로

 

제1형식(花開): 짧은 2음보/긴 2음보/긴 2음보

제2형식(滿開): 긴 2음보/긴 2음보/긴 2음보

제3형식(落花): 긴 2음보/긴 2음보/짧은 2음보

 

이와 같은 3가지 외형적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 자수율의 엄격성에 구애되지 않는 유연성을 견지한다. 제1형식의 일행은 청자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제2형식은 자연스러움 제3형식의 삼행은 빠른 결말에 이르도록 하는 효과를 기대한다(이러한 3형식을 일본의 字余り[음수여분, 和歌 俳句 등에서, 음수가 정해진 음보다도 많은 것. 예: 芭蕉野分(ばしょうのわき)して盥(たらい) に雨を聞く夜(よ) かな-松尾芭蕉]와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음운적으로는 울림도가 높은 음소의 사용에 유의하고, 단어의 선택에 있어서는 실재 또는 자연성을 유지하도록 의미상의 내포성(內包性)보다는 외연성(外延性)에 특히 유의한다. 시조를 절반으로 잘라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차라리 삼구육명(三句六名)의 새로운 해석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그렇다고 해서 여느 평범한 형식이라고 보면 안 된다. 

 

제1형식(花開)의 소절(素節)에 대한 예문


       시위 군중을
       베란다 끝에 앉아
       비둘기가 바라보네
       
-<비둘기> 전문       

      제2형식(滿開)의 소절(素節)에 대한 예문


       살구꽃 구경왔다가
       문지방을 베고 누워
       친구는 코를 곱니다
       -<문지방>전문

      제3형식(落花)의 소절(素節)에 대한 예문 

       관촉사 벚꽃 속에서
       문상 못한 친구 만나
       흠칫 놀라다
       -<벚꽃>전문

이 시집을 엮으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제 자유시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예술의 원칙으로 제시했던 생소화와 디제시스(diegesis)와 미메시스(mimesis)의 되새김이다. 17세기의 고전주의가 주로 이성적 모사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19세기의 리얼리즘은 주로 감각적 모사설에 기반을 두고 서로 단절된 채 수용되었다는 통설(그러나 필자는 베이컨(F. Bacon), 로크(J. Locke), 버클리(G. Berkeley), 흄(D. Hume)으로 이어지는 경험론으로 본다)과는 대조적으로 다시 돌아온 리얼리즘은 유기적으로 밀착 봉합되어 꿰맨 자국이 없다는 것이며, 오히려 대응설 또는 경험론을 버리고 후설(E. Husser)의 현상학과 하이데거(M. Heidegger)의 실존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니멀리즘(minimalism)이 그렇다. 그러므로 보편성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소절은 전적으로 정합설이나 파르나스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며, 절제 속에서 긴장과 의미의 생성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 과정에 시선을 집중할 뿐이다.

결국 이렇게 미세하고 중도적인 시각이, 솔직히 말해서 그레마스(A. J. Greimas)의 구조의미론에 초점을 더 맞추고, 따라서 의미란 고정된 것이 아니며 화자의 의도가 그대로 의미로 표출되는 것도 아니며, 실제적으로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은 한 장소에 이중의 복사가 방출되는 그 의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소절이라고 하는 발화자료체(corpus)가 하위계열적으로 변이의미소를 거느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보편성의 랑그로 환원시키는, 그리하여 그 구조는 기본적 역사적 문체적 단층과 장기 중기 단기를 종합한 총체지속성(duration)을 가지고 있는 구조로 즉각 포착하는, 일종의 책략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바로 이것이 서스펜스로서의 극적 광경을 연출한다. 그렇다고 해서 외삽적(外揷的) 수사적 메타포와 상징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이렇게 서스펜스로서의 수사법적인 것은 내재적인 것이며, 기호(sign)로서가 아니라 격상(格象: figure) 또는 단자(單子: denomination)로서 기능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소절은 실재 그대로의 표상 가운데 특정 대표만을 취급하며, 다시 말해서 표출로서의 발화자료체에 자의적(내수용으로서의)으로 특정 의미가 주어지는 일종의 총체적 이미저리 또는 파롤임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자의적이라고 해서 제멋대로(정신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또는 전지전능하다는 의미가 아님은 물론이다. 격상 안에서 내재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극적 광경으로서의 이러한 표상성은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지각 모두가 해당된다. 이는 유식론(唯識論)에서 십이처(十二處) 가운데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근(六根)으로써 소의(所依)를 삼고 있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육경(六境)과 유사하다. 이를 도표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X축과 Y축의 표상을 등식으로 조합하면 시각=청각 청각=시각 시각=후각 후각=시각 시각=미각 미각=시각 시각=촉각 촉각=시각 시각=정념(情念) 정념=시각(+부분)과 같은 이중 조합의 60개와 그리고 시각=시각(-부분)과 같은 6개의 단일 조합이 이루어져 모두 66개의 이미저리 내지는 메타포의 기본구조가 성립된다. 이러한 랑그체계에 바탕을 두고 쉴 사이 없이 시니피에를 비워내며 새로운 의미로 바꿔치고 있는 신화체계는 아무튼 고착성이 없으며, 또 표층에서 이루어지는 결정이 아니라 심층에서 예증되는 후소(後素)라고도 일컬어질 수 있다.

이렇듯 표상의 대표만을 취급하기 때문에 소절은 실체를 무시해 버리는 경향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처분해서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체보다 더 실체적인 것처럼 연기한다. 무의미(nonsense)는 배격되는 것이다. 상징이 아니고 왜곡이며 차라리 형식 속에 내재되어 팽창된 상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복합 동류체(complex iosotopy)로서의 결합체(syntagme)가 허용되는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현상을 랑그체계의 시니피앙과 신화체계의 형식, 그리고 시니피에와 신개념이 끝없이 교차한다고 해서 결말이 없는 알리바이와 회전문에 비 한 R. Barthes의 견해와도 일치한다. 그에게서 바흐친(M. Bakhtin)의 크로노토프(chronotoph)와 다성성(polyphony)의 이론과 게다가 비영합게임(non zero-sum game)과 같은 사고체계의 빌미가 엿보인다. 그러므로 소절은 폐쇄가 아니라 개방된 특별형식임을 다시 한번 천명한다. 그리고 은익자로서의 후소(後素)는 후공(後功), 여백(餘白), 여운(餘韻), 토운(tone), 신화체계, 심층구조, 빙산기법(iceberg technic)이라는 아이소토피로서의 유의어를 가지고 있음을 아울러 밝힌다.

시집 『감을 우리며』(1988)에서 관심을 기울이다가 이번에 깊은 믿음을 갖고 시로서의 형식을 확정하였으며, 소절은 이러한 외형 외에 곡신(谷神)의 현빈(玄牝)과 혼돈(渾沌)의 칠규(七竅) 또는 견산지시산(見山祗是山)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몸부림치는 포에지 속에서 형상화되었음을 공개한다. 어원적으로는 회사후소(繪事後素)와 소이위현(素以爲絢), 소기위이행( 其位而行)에 근거하였으며, 소(素)는 문질빈빈(文質彬彬)의 질(質)과 “소 유현재야(素 猶見在也)”의 보이는 것이 유예된 재(在), 그리고 “소부귀 행호부귀(素富貴 行乎富貴)”의 “어떤 처지에 놓이다”라는 뜻의 素이다. 鄭司農(정사농: 鄭衆은 字가 仲師이며, 東漢時代에 河南開封人으로 경학가인 鄭興의 아들이다. 章帝때에 그는 大司農[財政業務를 管轄]이란 관직을 지냈기 때문에, 경학가들은 모두 그를 鄭司農이라고 칭했다. 東漢末年에 이르자 鄭玄이라는 경학가가 출현하자 후인들은 이 두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鄭衆을 先鄭, 鄭玄을 後鄭이라고 불렀다. 그는《易》《詩》《三統曆》을 망라해서《春秋難記條例》라는 저작을 남겼는데 이는 당시에 매우 유명했던 책이었다. 그의 생평에 대해서는《後漢書.鄭衆傳》을 참고)은 소(素)란 회화의 질(質) 즉 색채의 정신적 표현으로써 후공(後功)이라고 한다. 주희(朱熹)는 현(絢)과 대비하여 보이지 않는 질(質)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사군자(四君子)인 매란국죽(梅蘭菊竹)은 현(絢)이며 진선미정(眞善美貞)은 소(素), 즉 梅=善, 蘭=美, 菊=眞, 竹=貞이다. 화가는 이 후소(後素)의 원리를 알아야 하고 이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진의를 알아야 한다. 이 원리를 바르트(R. Barthes)의 기호의 3차 항 모형에 대입시켜 보면 대단히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난다.

 

1차 항으로서의 현(絢)은 시니피앙과 시니피에가 꽉 차 있어 풍요로운 정지상태를 지향한다고 한다. 이 시니피에는 사전이 제공하는 것이다. 랑그의 차원인 것이다. 이 1차 항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는 2차 항의 형식이 된다. 2차 항으로서의 시니피앙은 형식이라는 이름으로 그냥 남겨 두고 시니피에를 비워낸다. 그 대신에 신개념으로 채운다. 이러한 과정을 시니피앙의 도둑질이라 한다. 다시 말해서 매(梅)와 같은 소재들은 신화에 의해 포획되는 순간 순수 의미 기능에게 진압된다. 신화는 가공되지 않은 날것으로서의 동일한 소재로 보일 뿐이다. 그리고 졸시 /소나기 속으로/기차가 달려가는/철로 밑 민들레/에서 ‘기차’를 이 모형에 다시 대입시켜 보자.

여기서는 ‘기차’ 하나만을 다루고 있으므로 다소 문맥의 파악이 어렵다. 그래서 그레마스(A. J. Greimas)의 기호 사각형에 이것을 다시 대입해 보자.


  


위의 기호 사각형의 행위주(actant)들은 두 개의 문장을 만들어낸다. 표층에서는 “기차가 민들레 위를 달린다”, 심층에서는 “강자가 약자 위에 군림한다”가 그것이다. 이것은 매우 역동적이어서 행위자의 자질을 형성하고 그리고는 행위자에게 포획된다. /주체=비반주체/, /반주체=비주체/는 서로 내함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귀결이다. 그러므로 素는 기호 모형의 개념과 기호 사각형의 심층구조와 같은 것으로 나타났음이 밝혀진 셈이다. 이 素는 시공이 포섭된 [素=在=處=行]으로서, 비록 뒤에 숨어 있지만 제8식(第八識)이나 노에마처럼 지향적이며 지시적이며 환원적이며 로고스로서 실질적 익명의 통제자로 군림하고 있음을 아울러 밝힌다.

그러나 이 통제자는 절대자가 아니며 또 다른 파롤의 희생양이 될 운명을 갖고 태어났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2

다음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현대시에 역행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 실험이 무모한 짓이라고 염려하고 있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현대시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보들레르(C.Baudelaire)의 <Correspondances(상응)>이 수록된 "악의 꽃"의 시들이 소네트 또는 4행시 등의 정형시이며 T.S.엘리엇(T.S.Eliot)과 같은 시인도 정형시를 쓰고 있고 또한 그는 <자유시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전통시(정형시)와 자유시의 구별은 없고 우수작과 졸작만이 존재한다고 언급하였음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2행시로부터 14행 소네트와 같은 정형시가 완성된 뒤에 자유운율의 시를 추구하고 있는 서구와는 달리 이러한 정형의 완벽성을 기하지 못한 한국의 경우에는 그들과는 달리 향가로부터 민요와 개화가사에 이르기까지의 정형과 운율에 더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럴 경우 시의 현대성(우수성)이 문제가 되는 것인데, 자유시만이 현대시이기 때문에 자유운율의 시를 추구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쓴 뒤에 우수한 현대시라고 자화자찬하는 시인이 있다면 커다란 착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는
노무현 후보에게 밀려

아아 아깝게도 중도에서 사퇴하고 말았네

꽃이 피는 어느 날에

    

이러한 착각은 "enjambement(구걸치기)"를 자유시로 생각한 황석우나 또 현대에 와서는 "blank verse(연체시)"를 자유시로 생각하고 있는 분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도 Foot과 Meter와 Rhyme은 살아 있는 것이며, 더구나 이러한 변형은 정형시에서 예외로 인정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시의 형태를 만들었다고 해서 현대시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위의 예문에서 본 바와 또한 같다.

결국 자유시는 정형에서 벗어나 운율이 없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정형시보다 더 좋은 운율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파운드[Ezra Pound]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정형시보다 더 구속적이라는 것을 역으로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유시는 보들레르(C.Baudelaire), 랭보(Rimbaud) 또는 휘트먼(W.Whitman)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이 형식은 중세 이전부터 사용되던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예가 시편이다.1)

 

3

소절의 표현법에 대하여:

위의 도표에 나타난 의미소 ⓑⓒⓔⓕ, 그리고 ⓐ와 ⓓ의 부류(class)를 서로 바꿔가며 조작하여 결합하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문장의 성분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이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위의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더니티는 4의 문장 속에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와 3에도 모더니티가 있는 것 같지만 청자에게 개별적인 의미를 강요(cf : 김기림의 <눈물의 강요>를 참고 바람)하는 주장이나 폭력이며, 4의 경우에는 의미가 보편적이어서 폭력성이 없기 때문에 리얼리티가 살아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모더니티는 표층에는 나타나지 않고 심층에 숨어 있어서 오감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것이지만, 마치 형태가 있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소절은 바로 4와 같은 표현을 기본적으로 요구한다.

4

蛇足: 소절은 3행단시로서 한국시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고 하는 약간 성스러운 의미를 가지고 탄생되었습니다. 이러한 실험은 1988년 졸시집 <감을 우리며>에 일단 선을 보였으며, 1995년 <시문학>에 연재를 하고, 1998년 <번개와 장미꽃>이라는 소절집으로 정리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3행시라는 이름하에 문학성과는 거리가 아주 먼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용솟음쳐 올라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엄숙한 것은 아니며 이 의미에 찬동하거나 흥미를 가지고 있는 분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 또 그렇다고 문학성에서 많이 벗어나 지나치게 외설적이거나 선전 선동과 같은 글은 아니 되겠지요. 그런 취미를 가지고 계신 분은 그런 사이트가 별도로 있으니 그곳을 찾아 가시면 되겠습니다. 咄.

  

蘇山庵主人 주근옥 삼가

 

 

각주

1) 박종수, 「시편연구」, 자유시는 W. 휘트먼 또는 프랑스 상징주의자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고 시편에서 시작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박종수에 의하면, 1753년에 Robert Lowth의 저술이 발간된 이래 시편의 시는 시행으로 구성되어있고, 시행은 다시 둘 또는 세 개의 보격(meter)으로 나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왔다. 또 보격과 보격은 짧은 중간 휴지에 의해 분리되고, 시행은 긴 휴지로 끝맺어진다. 이것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1) 3 + 3 형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하하리슈/ 엘라이/ 이임)=3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우르움밈/ 야할리푸/ 코아흐)=3

―이사야 41:1

 

2) 3 + 2 형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말르케/ 타르쉬스/ 우스바)=3

공세를 바치며(미느하/ 야쉬부)=2

―시편 72:10

 

3) 2 + 2 형

내가 오랫동안 고요히 하며(헤헤셰티/ 메올람)=2

잠잠하여 참았으나(아하리쉬/ 에트아페크)=2

―이사야 42:14

 

시행의 구성 요소인 보격들은 "보격간 대구법"(혹은 평행법: parallelism of members)이라고 일컬어지는 공통성(commonality) 또는 대응성(correspondence)을 종종 갖는다. 두 세 개의 보격들과 아울러 휴지와 보격간의 대구법으로 하나의 시행을 구성하는 이러한 관행에 대해서는 시편 24편 1-3을 예로 들어 도식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자유시의 형식임을 알 수 있다.

 

A /+ B //

 

혹은 경우에 따라

 

A /+ B /+ C //

 

1절

A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B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

 

2절

A 여호와께서(그가)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B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3절

A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B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참고문헌 :

구조의미론(Structural Semantics); A.J.Greimas/주근옥 역

의미론선집(On Meaning); A.J.Greimas/주근옥 역

정념의 기호학(The Semiotics of Passions); A.J.Greimas, Jacques Fontanille/주근옥 역

미니멀리즘; C.W. 할렛, 워런 모트/주근옥 역

주근옥의 미니멀리즘 시선집

 오늘날의 신화(Roland Barthes)

 

 한국시 변동과정의 모더니티에 관한 연구(2001, 시문학사)_주근옥

     -한국 현대시사에 대한 철학적 고찰의 빛나는 성과_장수익(한남대 국문과 교수)

 

시편연구, 박종수(The Book of Psalms)

보들레르의 "악의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