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효시라고 하는
 

 —따라서 "현대시(modern poetry)는 자유시(free verse)다."라고 하는 명제는 진리가 아니라 일부 거짓이다.

1. correspondances(相應)의 Rhyme 분석


Correspondances


C. Baudelaire


La Nature un temple où de vivants piliers

Laissent parfois sortir de confuses paroles;

L'homme y passe á travers des forêts de symboles

Qul l'observent avec des regards familiers.


Comme de longs échos qul de loin se confondent

Dans une ténébreuse et profonde unité,

Vaste comme la nuit et comme la clarté,

Les parfums, les couleurs et les sons se répondent.


Il est des parfums frais comme des chairs d'enfants,

Doux comme les hautbois, verts comme les prairies,

- Et d'autres, corrompus, riches et triomphants,


Ayant l'expansion des choses infinies,

Comme l'ambre, le musc, le enjoin et l'encens,

Qui chantent les transports de l'esprit et des sens.


 

상응(相應)


대자연은 하나의 사원(寺院)이니 그 속에서

살아있는 기둥들이 때로 알 수 없는 말들을 새어 내보내니

사람들은 낯익은 눈길로 자기를 지켜보는

상징의 숲을 가로 질러 가네.


어둠처럼, 광명처럼 광대하며

컴컴하고도 깊은 통일 속

저 멀리서 혼합되는 긴 메아리들처럼

향기와 색채와 음향이 서로 화답하네.


어린 아이 살처럼 싱싱하고

목적(木笛)처럼 부드럽고 초원(草原)처럼 푸르른 향기들도 있지.

―그리고 또 썩은 향기, 풍성하고도 요란한 향기도 있어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것들의 확장력(擴張力)을 지녔기에

정신과 육감(肉感)의 황홀을 노래하네.



위 시는 정형시형식인 소네트임(End rhyme은 포옹운). 다음의 하이쿠, "目には靑葉(あおば)山ほととぎす初鰹(はつがつお)눈에는 신록 귀에는 두견새 입엔 맏물 가다랭이. 山口素堂(やまぐちそどう, 1642~1716)"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Sonnet(소네트)

소곡(小曲) 또는 14행시(行詩)라고 번역한다. 13세기 이탈리아의 민요에서 파생된 것이며, 단테 및 페트라르카에 의해 완성되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널리 유럽 전역에 유포되었다. 한 편은 4행·4행의 옥타브(octave)와 3행·3행의 세스테트(sestet)로 된 14행시이며, abba/abba/cde/cde (페트라르카 형식) 등 몇 개의 정해진 법칙에 의한 각운(脚韻)을 따라 구성된다. 내용적으로는 서곡(序曲) → 그 전개 → 새로운 시상(詩想)의 도입 → 종합결말이라는 기승전결(起承轉結) 방식이다. 대부분이 연애시로 수십 편의 연작(聯作)으로 된 것이 많다.

페트라르카의 《칸초니에레》는 소네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롱사르 등 플레이아드파(派)의 시인들과, 독일에서는 슐레겔과 괴테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영국에서는 토머스 와이엇과 사례 백작(伯爵)에 의하여 영국 형식의 소네트가 만들어졌고, 셰익스피어, 밀턴, 워즈워스, 키츠, 로제티, 브라우닝 부인 등에 의한 우수한 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

영국 형식의 소네트는 4·4·4·2행 (각운은 abab/cdcd/efef/gg)으로 되며, 이것을 셰익스피어 형식이라고 한다. 보들레르, 말라르메, 발레리, 릴케 등도 그들의 중요한 작품을 소네트 형식으로 썼다.

http://poetry.wonkwang.ac.kr/sonnet.htm


보들레르의 시형식을 자유시로, 율격은 내재율(자유운율)로 보고 있는 사이트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문학교육사이트(클릭하면 사이트가 뜸)  
 
(그러나 결코 자유시나 내재율이 아님을 위의 sonnet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들레르의 생애(1821.4.9 ~ 1867.8.31)

파리 출생. 아버지는 62세의 원로원(元老院)사무국 고관이었고, 어머니는 후처로 28세였다. 이러한 부모의 연령 불균형이 이상신경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6세 때 아버지가 죽고, 이듬해에 어머니는 육군 소령 자크 오피크와 재혼하였다. 의붓아버지가 대령으로 승진하여 리옹에 부임하자, 11세 된 그는 리옹의 사립학교에 들어갔고, 이어 리옹 왕립중학교의 기숙생이 되었다.

다음으로 군인 아버지의 파리 전근에 따라 루이 르 그랑 중학교로 전학했는데, 최고학년이 된 18세 때 품행관계로 퇴학처분을 당했다. 그러나 대학 입학 자격시험(리세)에는 단번에 합격하였다. 그 후 문학지망을 표명하여 양친을 실망시키고, 카르테 라탱을 방랑하며 방종한 생활을 하였다.

보다 못해 내려진 친족회의의 결의로 캘커타행 기선을 탔으나, 인도양의 모리스섬(모리셔스本島)과 부르봉섬(프랑스령 레위니옹섬)에 체재하였을 뿐, 9개월 후에는 파리로 되돌아갔다. 이윽고 성년이 되어 의붓아버지가 남겨준 재산을 상속하여, 센강(江)의 생 루이섬[島]에 거처를 두고 댄디슴의 이상을 추구, 호화판 탐미생활에 빠졌다. 흑백혼혈의 무명 여배우 잔 뒤발과 알게 되자, 관능적인 시흥(詩興)의 원천으로 삼았고, 평생의 악연(惡緣)을 맺은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2년 동안에 유산을 거의 다 낭비해 버리자 법정후견인이 딸린 준금치산자(準禁治産者)가 되었다.

24세 때 《1845년의 살롱》을 출판하여 미술평론가로서 데뷔하였으며, 문예비평·시·단편소설 등을 잇달아 발표하여 문단에서 활약하는 한편, 1848년 의붓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2월혁명의 폭동에도 가담하였다. 또 E.A.포의 작품을 번역·소개하였고 만년에 이르기까지 17년 간에 5권의 뛰어난 번역을 완성하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배우 마리 도브륀과 연애관계를 가졌으며, 또 사바티에 부인의 살롱의 단골이 되어 그녀를 성모처럼 받들면서 많은 연애시를 썼다. 1857년, 청년시절부터 심혈을 기울여 다듬어 온 시를 정리하여 시집 《악의 꽃 Les Fleurs du Mal》을 출판하였으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벌금과 시 6편의 삭제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해 의붓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는 센강(江) 어귀의 옹푸루르 별장으로 옮겨 살았다. 1860년에 《인공낙원(人工樂園)》을 출판하고, 1861년에 《악의 꽃》의 재판을 간행하였다. 이 무렵부터 문학가로서의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1864년, 벨기에의 브뤼셀에 가서 궁색한 생활을 면하기 위한 강연여행을 가졌으나 건강이 악화되었다.

1866년, 나뮈르시(市)의 생 루 교회를 구경하던 중 졸도하여, 뇌연화증(腦軟化症)의 징후로 브뤼셀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다음, 어머니를 따라 파리로 돌아와서 입원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여름, 실어증으로 46세의 나이에 사망하였다.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에 있는 오피크가(家)의 무덤에 묻혔다.

그의 사후, 1868~1869년에 간행된 전집 속에는 고티에가 서문을 쓴 《악의 꽃》(제3판) 《소산문시 Petits pomes en prose》, 만년의 작품인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 Le spleen de Paris》이 수록되었으며, 또 들라크루아·바그너·고티에 등을 논한 평론은 《심미섭렵(審美涉獵) Curiosits esthtiques》(1869) 《낭만파 예술 L'art romantique》(1868)이라는 총제목하에 수록되었다. 또한 만년의 수기인 《화전(火箭)》 《벌거벗은 마음》은 《내심(內心)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보들레르의 서정시는 다음 세대인 베를렌·랭보·말라르메 등 상징파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죽은 지 10여 년이 지나서야 그의 문학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었다. 발레리는 “그보다 위대하고 재능이 풍부한 시인들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보다 중요한 시인은 없다”라고 절찬하였다. E.A.포의 지적 세계에 감동하여 낭만파·고답파의 구폐(舊弊)에서 벗어났으며 명석한 분석력과 논리와 상상력을 동원하여 인간심리의 심층을 탐구하고, 고도의 비평정신을 추상적인 관능과 음악성이 넘치는 시에 결부한 점에 그의 위대성이 있다.


   2. 시집 "악의 꽃" 프랑스 사이트

LES FLEURS DU MAL(édition de 1861)-Charles Baudelaire

장 랭보(Jean-Nicolas-Arthur Rimbaud) 장 랭보(Jean-Nicolas-Arthur Rimbaud) 

 3. 자유시 고찰-T. S. Eliot
 
자유시 고찰-T. S. Eliot

자유시는 산문시가 아니다.

4. 자유시는 현대에 출현한 것이 아니다(시편의 시형식)


자유시는 W. 휘트먼 또는 프랑스 상징주의자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고 시편에서 시작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박종수에 의하면, 1753년에 Robert Lowth의 저술이 발간된 이래 시편의 시는 시행으로 구성되어있고, 시행은 다시 둘 또는 세 개의 보격(meter)으로 나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왔다. 또 보격과 보격은 짧은 중간 휴지에 의해 분리되고, 시행은 긴 휴지로 끝맺어진다. 이것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1) 3 + 3 형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하하리슈/ 엘라이/ 이임)=3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우르움밈/ 야할리푸/ 코아흐)=3

―이사야 41:1


2) 3 + 2 형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말르케/ 타르쉬스/ 우스바)=3

공세를 바치며(미느하/ 야쉬부)=2

―시편 72:10


3) 2 + 2 형


내가 오랫동안 고요히 하며(헤헤셰티/ 메올람)=2

잠잠하여 참았으나(아하리쉬/ 에트아페크)=2

―이사야 42:14

 

시행의 구성 요소인 보격들은 "보격간 대구법"(혹은 평행법: parallelism of members)이라고 일컬어지는 공통성(commonality) 또는 대응성(correspondence)을 종종 갖는다. 두 세 개의 보격들과 아울러 휴지와 보격간의 대구법으로 하나의 시행을 구성하는 이러한 관행에 대해서는 시편 24편 1-3을 예로 들어 도식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자유시의 형식임을 알 수 있다.

A /+ B //


혹은 경우에 따라

 

A /+ B /+ C //

 

1절

A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B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


2절

A 여호와께서(그가)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B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3절

A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B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주근옥 정리
  http://www.poemspace.net/

 주근옥 저, 한국시 변동과정의 모더니티에 관한 연구, 시문학사, 200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