柿食えば鐘が鳴るなり法隆寺(감을 먹으면 범종이 울리도다, 호오류우지)—正岡子規

 

(歌よみに与ふる書)

    —歌人(うたびと); 和歌(わか)를 짓는 사람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 박전열, 이한창 역

 

1867. 10. 14 일본 마쓰야마(松山)~1902. 9. 19 도쿄. 일본의 시인·수필가·평론가. 본명은 마사오카 쓰네노리(正岡常規). 일본의 전통적 시 형식인 하이쿠(俳句)와 단카(短歌)를 되살려 혁신시켰다. 무사 집안에서 태어나 1883년에 공부를 하기 위해 도쿄로 왔으며 1885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4년 뒤에 결핵에 걸려 거의 평생 동안 병약하게 살았다. 도쿄제국대학에서 2년 동안(1890~92) 공부한 뒤 출판사에 들어갔다. 1892년에 이미 그는 수백 년 동안 시의 주제와 어휘를 규정해온 낡은 규칙에서 시를 해방하려면 새로운 문학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1900년에 〈니혼 日本〉이라는 신문에 발표한 평론 〈서사문 敍事文〉에서 그는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샤세이'[寫生:자연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라는 낱말을 도입했으며 시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고 평상시에 쓰는 말로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주; Ezra Pound의 시각시, 언어시, 즉 소용돌이주의[vorticism, 1914]와 비교하기 바람). 또한 논설을 통해 8세기의 시가집인 〈만요슈 萬葉集〉와 하이쿠 시인인 요사 부손(謝蕪村)에 대한 관심을 새로이 불러일으켰다. 마사오카는 시뿐만 아니라 〈병상 육척 病床六尺〉(1902)을 비롯한 수필에서도 자신의 병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지만, 그의 작품은 놀랄 만큼 초연하여 자신에 대한 연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가인에게 드리는 글 (그 한 번째)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근래에 들어 와카[和歌]는 전혀 부흥되지 않았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만요[萬葉]이래, 사네토모[實朝]의 와카를 제외하고는 볼 만한 것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네토모라는 이는 삼십이 채 못 된, 이제부터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어이없이 최후를 마치셨는데 참으로 유감스럽습니다. 그분으로 하여금 다시 십년만 더 살게 했더라면 좋은 와카를 얼마나 많이 남겼을지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어쨌든 그는 가장 뛰어난 가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일부러 히토마로[人麻呂]나 아카히토[赤人]의 흉내를 내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쓰라유키[實之]나 사다이에[定家]의 찌꺼기를 뒤적이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의 자리에 우뚝 서서, 태산과 높이를 다투었으며 해와 달과 더불어 그 빛을 경쟁했던 점만 보아도 실로 두렵고 존경할 만 한 분으로서 자신도 모르게 머리가 숙여집니다. 예로부터 그를 가리켜 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평이 전해 오고 있는데, 이는 틀림없이 잘못된 것으로 소생은 그가 호조[北条]씨를 꺼려해서 재주를 숨겼던 사람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대기만성형의 사람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흔히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게 문학․기예 등에 통달했던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지위가 보잘 것 없는 자리게 있는 것이 통례입니다만, 사네토모만은 전혀 예외의 인간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사네토모의 와카는 단지 솜씨가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역량과 위세와 견식이 있으며, 시대의 흐름에 물들지 않고 세상에 타협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그는 흔히 볼 수 있는 호사가들이나 지루한 와카만 부르던 귀족 가인들과는 아무래도 동일하게 평가하기 어려운 가인이었습니다. 훌륭한 식견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사네토모의 와카와 같이 힘찬 와카는 읊어 낼 수가 없습니다.

마부치[眞淵]는 무척이나 사네토모를 극찬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찬사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마부치는 사네토모 와카의 가치를 반만 알고 다른 반을 몰랐었기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마부치는 와카에 통달한 근세의 대가로서, 만요슈[萬葉集]를 높이 받든 점 등을 생각할 때, 당대에 있어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생의 눈으로 볼 때 아직도 그의 만요 찬양은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듭니다.

마부치가 만요에도 좋은 와카가 있는가 하면 나쁜 와카도 있다고 말한 점이 몹시도 마음에 걸립니다. 거듭해서 말씀드리거니와 세상 사람들이 만요의 와카 중에서도 어렵고 딱딱한 와카만을 가지고 ‘이렇기 때문에 만요는 틀렸다’라는 식으로 공격하는 것이 두려워서 그렇게 말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원래 마부치 자신도 만요의 와카를 좋은 노래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자신 없이 말했을 것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어렵고 딱딱한 와카라고 말하는 만요의 와카나 마부치가 나쁜 노래라고 말하는 만요의 와카들 중에는 소생이 가장 좋아하는 와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어찌된 연고인가 하면 다른 사람의 와카는 말할 것도 없고 마부치의 와카에도 소생이 좋아하는 것과 같은 만요초[萬葉調]의 와카는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부치의 가집(歌集)을 보고서 마부치가 의외로 만요의 와카를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는 점이 놀랐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드린다고 해서 전혀 마부치를 깎아 내리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가토리 나비코[楫取漁彦]는 만요를 모방하여 많은 와카를 읊었지만, 이 정도의 와카라면 하고 내세울 만한 와카는 극히 적습니다. 그토록 옛날 와카는 흉내 내기조차 어려운 것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근래에 들어 소생이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가인은 아니지만 오히려 옛 와카를 전문 가인보다 더 훌륭하게 읊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옛날 가인들의 와카는 가인이 아닌 지금 사람들의 와카보다도 훨씬 뒤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여 왠지 허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인들의 와카는 옛날 가인들의 노래보다도 더욱 뒤떨어졌다는 점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는지요.

조카[長歌]는 단카[短歌]와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킨슈[古今集』의 조카 등은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을 정도로 졸렬합니다만, 이러한 조카가 고킨슈 시대나 그 후세에 그다지 유행하지 않았던 것은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러기에 후세에 조카를 읊는 가인들은 직접 만요의 조카를 본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실제로 상당히 좋은 작품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조카를 즐겨 노래하는 사람들은 단카를 노래하는 사람들에 비해 다소 그 솜씨가 좋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오우타도도코로[假家所]파의 가인들이 제멋대로 부른 조카 따위는 하우타[端唄]만도 못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를 비난하여, 조카가 만요슈[萬葉集]의 답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비웃고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인들에게 그토록 어려운 일을 요구하여 왔기에, 고킨 이후에는 거의 새로운 와카가 없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여러 가지로 드릴 말씀이 남아 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가인에게 드리는 글 (그 두 번째)

쓰라유키는 졸렬한 가인(歌人)이며 고킨슈는 하찮은 가집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러한 쓰라유키나 고킨슈를 숭배하는 일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은 이렇게 말씀드리는 저 자신도 수년 전까지만 해도 고킨슈를 숭배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기에,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고킨슈를 숭배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고킨슈를 숭배했던 동안에는 참으로 와카라는 것은 우미한 미를 갖고 있어야 하며, 고킨슈는 와카의 정수만을 뽑아놓은 것이라고 여겨 왔습니다. 그러나 삼년간 사귀어온 연애가 하루아침에 식고 보니, 이토록 칠칠치도 못한 여자에게 여태껏 홀려 왔던가 하는 생각에 분하기도 하고 화도 나듯이, 고킨슈에 대한 저의 감정도 마치 그와 같습니다. 우선 고킨슈라고 하는 가집을 들고 맨 첫 장을 펼치면 바로 ‘작년이라고 해야 할까. 금년이라고 해야 할까(去年とやいは今年とやいは)’라는 와카가 나오는데 실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아무런 취향도 없는 노래입니다. 이는 일본인과 외국인 사이에 난 혼혈아를 일본이라고 불러야 할까 외국인이라고 불러야 할까 하는 것과 똑같은 말장난에 불과한 아주 졸렬한 와카입니다. 그 외의 노래도 모두가 대동소이하여, 서투른 재담이나 이지적인 노래뿐입니다. 그래도 구태여 고킨슈를 칭찬하자면 하찮은 노래들이긴 하지만, 만요슈(萬葉集)와는 또 다른 새로운 하나의 가풍을 이루었다는 점은 높이 살만 한 것으로, 어떤 일이든 처음 시작했다는 것은 귀중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오로지 고킨슈의 흉내만을 재주로 삼고 있는 후세의 가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십년이나 이십년이라면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이백년이 지나고 삼백년이 흐를 때까지도 그 찌꺼기만 핥고 있는 소견머리가 없는 점에는 완전히 질려 버렸습니다. 이 가집은 어떠하고 저 가집은 어떠하다고 내세우고들 있지만 모두가 고킨슈를 흉내 낸 찌꺼기의 찌꺼기이며, 또 그 찌꺼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쓰라유키[實之]에 있어서도 이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와카 중에 와카다운 노래는 한 수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전에 어떤 사람에게 그렇게 말했더니, 그 사람이 ‘강바람이 차갑기에 물떼새가 울고 있다(三風寒み千鳥くなり)’라는 와카는 어떤가, 하고 반문을 하여 당황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와카만은 취향이 있는 풍류적인 와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밖에는 그 정도 수준의 와카가 한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하늘에서는 알 수 없는 눈(空に知られぬ雪)’이라는 구는 말장난입니다. ‘사람은 글쎄 그 마음을 알 수 없지만(人はいさ心もしらず)’이라는 구도 천박한 정취라고 생각되옵니다. 다만 쓰라유키는 처음으로 이와 같은 와카를 노래한 사람으로 그의 와카[和歌]는 옛 사람들의 와카를 흉내 낸 찌꺼기는 아닙니다. 시로 비유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고킨슈 시대의 와카는 중국 송나라의 송시(宋詩)에 비교될 수 있으나, 해학이나 골계와 같은 세속적인 분위기가 넘치고 있는 점 때문에 도저히 당시(唐詩)와는 비교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세속적인 분위기는 송시대의 특색으로서 중국시의 전체적인 면에서는 변화를 가져오고 있기에 흥취가 있으며 그런대로 좋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오직 이러한 세속적인 점만을 소중하게 여기어 송시대 사람들의 단점만을 흉내내던 간쇼(實政) 이후의 가인들은 문학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고킨슈 이후의 가집들 중에는 신고킨슈(新古今集)가 조금 뛰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킨슈보다 좋은 와카들이 눈에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노래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손으로 꼽아서 셀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합니다. 사다이에[定家]라는 이는 와카에 능숙한지 서투른지를 알 수 없는 가인으로서, 신고킨슈의 와카들을 선정한 것을 보면 조금은 사리를 분별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자신의 와카 중에는 변변한 와카가 없습니다.

‘말을 멈추고 소맷자락의 눈을 털어 내리는(駒とめて袖うちはらふ)’, ‘바라보니 화려한 꽃도 단풍도(見わたせば花も紅葉も)’ 등의 와카가 사람들에게 애송될 뿐입니다. 사다이에는 가노[狩野]파의 화가(畵家)에 비교하자면 단유[探幽]와 아주 닮은 것처럼 생각됩니다. 사다이에의 와카에 걸작이 없는 것처럼, 단유의 그림에도 걸작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다이에의 작품이나 단유의 작품에는 상당히 오랫동안 연마해 온 기량이 있으므로, 어떠한 작품이나 상당한 수준까지는 도달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명성 역시 서로 비슷한 정도의 위치에 있으며, 사다이에 이후 와카의 문벌이 생겼듯이, 그림에 있어서도 단유 이후에 문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문벌이 생겨난 이후에는 와카도 그림도 아주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예술에 있어서나, 와카의 가치 혹은 그림의 가치라고 하는 기준을 정해 버리면 이들 예술들은 진보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가가와 가게키[香川景樹]는 고킨슈와 쓰라유키의 숭배자로서 그의 견식이 낮았다고 하는 점은 새삼스럽게 말씀드릴 필요도 없습니다. 가게키에게는 물론 저속한 와카가 많았습니다만 좋은 와카도 있었습니다. 그 자신이 숭배하고 있던 쓰라유키보다도 뛰어난 와카가 많습니다만, 그 점만 가지고 가게키가 쓰라유키[實之]보다 더 뛰어났을지 어떤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단지 가게키 시대가 쓰라유키 시대보다 더 진보했었다는 점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가게키가 쓰라유키보다 훌륭한 와카를 지었다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게키의 와카에는 뛰어난 것과 졸렬한 것들이 마구 섞여 있다는 점에서, 하이진[俳人]으로 비유하여 말하자면 료타[蓼太]가 적당하다고 생각됩니다. 료타는 아주 우아한 하이쿠[俳句]와 저속한 하이쿠, 뛰어난 하이쿠와 졸렬한 하이쿠들을 많이 지었던 사람으로, 그의 하이쿠에는 이처럼 극단적인 면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더욱이 두 사람 모두 온몸에 패기를 가득 지니고 세상 사람들을 휘어잡았으며, 그 문하에는 전국 각지에 굉장히 많은 파벌을 가지고 있었던 점 등도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가게키를 배우려 한다면 좋은 점을 배우지 않으며 아주 크게 그릇된 길로 빠질 수가 있는데, 지금 가게키파라고 하는 사람들은 가게키의 속된 면만을 배우고 있기에 가게키보다도 더 졸렬한 와카만을 읊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곱슬머리를 가진 사람이 서양식으로 묶은 머리를 좋다고 생각하고 서양식 머리로 묶은 사람이 일부러 머리를 곱슬머리로 볶는 것과 같은 취향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점에 대하여 잘 살펴보시고 판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동서고금의 문학들을 잘 비교하여 살펴주셔야 하는 것으로, 하찮은 가서(歌書) 따위만 보고 있으면 스스로 자신의 미몽에서 깨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은 보는 시야가 좁기 때문에 자기의 기차가 움직이는 것을 모르는 채, 옆의 기차가 움직이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인에게 드리는 글 (그 세 번째)

가인들처럼 어리석고 태평스런 사람들은 다시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인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와카[和歌]만큼 뛰어난 것은 달리 없다는 점을 언제나 자랑스럽게 말합니다만, 이는 가인들이 와카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와카만이 제일 좋은 것처럼 자기도취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와카와 가장 가까운 하이쿠[俳句]조차 전혀 알지 못하기에 열일곱 글자만 갖추고 있다면 센류[川柳]도 하이쿠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이처럼 태평스럽기 짝이 없으므로 중국의 시를 연구할 리도 없으며 서양에도 시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무식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더욱이 소설이나 원본(院本)도 와카와 마찬가지로 문학이라는 것에 속한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필시 눈을 크게 뜨고 놀랄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제가 남을 헐뜯고 욕하는 예의를 모르는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실제 가인들이 그러하기에 그런 소리를 듣는다 해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소생의 말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소위 가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 하이쿠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단 한 사람이라도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생은 가인들에게 아무런 원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이처럼 욕설과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저의 심정을 살펴주셨으면 합니다.

와카가 제일 좋다고 말하는 것은 원래부터 전혀 이치에 맞지 않은 이야기로서, 와카만이 제일 좋다고 하는 근거는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하이쿠는 하이쿠대로 장점이 있고 중국시는 중국시대로의 장점이 있으며 서양시는 서양시대로의 장점이 있고 희곡인 원본(院本)은 원본대로의 장점이 있는데, 이러한 장점은 원래부터 와카가 따를 수가 없는 그들만이 지닌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장점입니다. 이러한 이론적인 근거와 달리 가인들이 와카만을 제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된 일인지요. 와카가 제일 좋은 것이라고 한다면 능숙한 사람이나 서툰 사람일지라도 아무렇게나 서른 한 자만 늘어놓으면 천하 제일가는 예술이라고 하여, 하이쿠나 한시 그리고 서양시들의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보다 뛰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소견을 듣고 싶습니다. 가장 서투른 와카라고 할지라도 가장 훌륭한 하이쿠나 한시보다도 뛰어났다고 한다면, 하이쿠․한시 등에 힘을 쏟을 바보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하이쿠나 한시들 중에서 와카보다 뛰어난 것이 있거나 와카 중에도 하이쿠나 한시보다 졸렬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오직 와카만이 뛰어난 것이라고 할 수 는 없을 것입니다. 가인들의 좁은 소견에 새삼스럽게 놀랄 뿐입니다.

하이쿠에는 율조(律調)가 없으나 와카에는 율조가 있으므로 와카가 하이쿠보다 뛰어나다고 어떤 사람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어떤 한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가인들 사이에는 그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인들은 율조라고 하는 것을 크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율조에는 부드러운 율조도 있으며, 급한 율조도 있습니다. 평화롭고 한적한 것을 노래할 때는 부드럽고 긴 율조를 사용해야 하며, 비애나 강개처럼 감정이 격하게 되거나 또는 자연계나 인간사에 있어서 사물의 활동이 몹시도 급하게 바뀌는 것들을 노래할 경우에는 급하고 짧은 율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말씀드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인들은 율조는 모두 부드러운 것으로만 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필경 종래의 와카가 부드러운 율조만을 취해 온 것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하이쿠나 한시는 읽지 않고 가집(歌集)만을 읽어 온 가인들에 있어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이는 참으로 곤란한 일인 것입니다. 부드러운 율조가 와카의 장점이라면 급한 율조가 하이쿠의 장점이라는 사실은 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급한 율조, 힘찬 율조라고 하는 율조의 맛을 가인들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인지요. 마부치[眞淵]는 사내답고 힘찬 와카를 좋아했습니다만 그의 와카를 보면 의외로 사내답고 힘찬 와카는 적으며, 특히 사네토모[實朝]의 와카처럼, 사내답고 힘찬 와카는 한 수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의 날개도 힘차게(飛ぶ鷲翼もたわに)’ 등과 같은 것은 마부치의 가집(歌集) 중에 있는 좋은 와카로서, 힘있는 와카처럼 보이지만 의미만 힘이 있을 뿐 어조는 약하게 느껴집니다. 사네토모로 하여금 이와 같은 생각을 노래하도록 했다면 마부치의 노래와 같은 어조로 노래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전통의 살을 추스르는 무사의(もののふの失なみつくろふ)’라는 와카처럼 독수리를 하늘로 날려 보낼 정도로 거친 취향이긴 하지만 다른 와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조가 강한 이 와카를 읊고 있으면 정말 싸라기눈이라고 뿌리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마부치의 와카가 이미 이러할진대 마부치 이후의 가인들이 와카는 말씀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와 같은 가인들에게 부손[蕪村]파의 하이쿠슈[俳句集]나 당나라시대의 한시집 등을 읽게 하고 싶습니다만, 교만해진 가인들이 스승들의 가르침 외에 다른 서적들을 읽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권하는 일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소생은 가인들에 비해서 국외자 또는 신출내기에 불과한 사람으로 가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며 와카의 격이 무엇인지 문법이 무엇인지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와카의 취향 여부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믿는 점이 있기에 이 점에 대해서는 오히려 전문 가인들의 불철저한 점을 탓하려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나쁜 이야기를 말씀드리면, 소생을 공연히 날뛰는 사람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소생이 천둥벌거숭이인지 아닌지는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말에 이론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몇 사람이든지 내방하도록 그 친구들에게 전해주시어, 그들과 사흘 낮과 사흘 밤을 지새워가면서 계속 토론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열심인 점에 대해서 소생은 결코 보통의 가인들에게 지지 않겠습니다. 급한 성격에 붓 가는 대로 썼기에 실례의 말도 많겠습니다만, 바다와 같이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가인에게 드리는 글 (그 네 번째)

공론(空論)만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가 어려우니 실제로 와카[和歌]를 예로 들어서 평하여 보라는 말씀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례를 들어 말하고자 하여도 끝이 없기에 어떤 와카를 들어 평가를 해야 할지 조금 망설여집니다만, 될 수 있는 대로 유명한 가인(歌人)들의 와카부터 살펴보려고 합니다. 마음에 짚이는 와카가 있으면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먼저 히토마로[人麻呂]의 와카라고 합니다만,

 

우지*내의 어살 말뚝에 흘러 떠내려 와서

떠도는 물결처럼 가는 곳 모르는데.

(もののふの 八十氏川の 網代木に いざよふ波の ゆくへ知らずも)

(もののふの やそうじがわの あじろぎに いざよふなみの ゆくへしらずも)―주근옥

 

라는 와카가 자주 인용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와카는 만요 시대에 유행했던 것처럼 단숨에 끝까지 읊어 내린 어조로서 조금도 속된 곳이 없으며 자구도 탄탄하게 되어 있으나, 전체적인 면에서 보면 위 3구는 쓸데없는 사족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리를 끌고 올라가는 산, 산새 꼬리의 늘어진 꼬리처럼 길고 긴 밤을 (足引の山鳥の尾のしだり尾のながながし夜を)’라고 하는 와카에는 수식된 구가 많으나, 이 경우 밤을 꾸며 주는 수식구가 많이 이용되었기 때문에 긴 밤의 모습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앞의 와카의 전반 3구는 와카의 이미지나 수사 면에서 그 효과가 전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이 노래가 명소(名所)를 부른 와카의 모범으로 인용되고 있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대체로 명소를 읊은 노래의 경우는 그 지방의 특색이 없으면 안 되는 것으로, 이 와카의 경우처럼 의미가 나타나 있지 않은 와카는 명소의 와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와카는 여러 가지 세속적인 분위기가 넘치고 있는 후세의 와카들과 비교하면 그래도 나은 점이 훨씬 많습니다. 더욱이 이와 같은 와카는 모범으로 삼을 만한 와카는 아니지만, 많은 노래 중에 한두 수정도 있는 것도 괜찮습니다.

 

저 달만 보면 천 가지 만 가지 서글퍼진다.

나 홀로 맞이하는 가을도 아닐 텐데.

(月見れば 千千に物こそ 悲しけれ 我身一つの 秋にはあらねど)

(つきみれば ちぢにものこそ さびしけれ わがみひとつの あきにはあらねど)―주근옥 

 

라는 노래는 사람들이 아주 칭찬했던 와카입니다. 전반의 3구는 막힘이 없이 시원스럽게 읊었기에 무난하지만 후반의 두 구는 이지적(理智的)인 구로서, 사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와카는 감정을 노래해야 하는 것인데 이처럼 이론을 늘어놓는 것은 와카의 참뜻을 모르기 때문이겠지요. 이 노래의 후반 두 구가 이지적이라는 것은 소극적으로 노래했다는 점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나 홀로 맞이하는 가을이라 생각하니(我身一つの 秋と思ふ)’라고 했다면 감정적인 와카로 되겠지만, ‘가을이 아닌데(秋ではないが)’라고 너무도 당연한 것을 말했기에 이지적으로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노래를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이지적인 면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속인들은 말할 것이 없지만, 지금 소위 가인들이라는 사람들 대다수도 이지적인 것만을 늘어놓고서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이것들은 와카가 아니며 그들 역시 가인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요시노*산의 깊은 안개 속이야 알 수 없지만

보이는 온 천지는 벚꽃으로 가득하다.

(芳野山 霞の奥は 知らねども 見ゆる限りは 櫻なりけり)

(よしのやま かすみのおくは しらねども みゆるかぎりは さくらなりけり)―주근옥 

 

위 와카는 야다 도모노리[八田知紀]의 유명한 와카라고 합니다. 그의 가집(歌集)을 아직 읽지 않았지만 이 정도가 명가라고 한다면 그의 와카도 어느 수준인지 대강은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이 와카도 앞의 와카처럼 ‘깊은 안개 속이야 알 수 없지만(霞の奥は 知らねども)’이라고 소극적으로 노래한 것이 이지적(理智的)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이미 ‘보이는 곳은 모두(見ゆる限りは)’라고 한 이상, 보이지 않는 곳은 알 수 없다는 의미가 그 속에 담겨져 있는데도, 일부러 알 수 없지만 이라고 새삼스럽게 밝히고 있는데 바로 이 점이 졸렬하다는 것입니다. 또 이 노래의 분위기, 즉 ‘보이는 곳은 무두 벚꽃 가득하여라(見ゆる限りは 櫻なりけり)’라고 읊은 부분도 역시 아주 졸렬하며 속된 표현입니다. 이 노래에 비하면 앞에서 말한 지사토(千里)의 와카는 이지적인 점이 결점이긴 하지만, 분위기는 훨씬 뛰어납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소극적으로 표현하면 언제나 이지적으로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객관적인 경치를 연상하면서 노래하는 경우에는 소극적이라고 해도 이지적으로 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말을 멈추고 소매의 눈을 터는 사람도 없다(駒とめて袖うちはらふ影もなし)’라고 노래한 와카의 경우, 객관적인 경치를 연상시키기 위해서 이처럼 노래하지 않으면 감정을 제대로 나타낼 수가 없기에 이지적인 와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 불교적인 와카와 같이 전체가 아주 눈에 띄게 이지적인 노래가 있는데, 이들 와카는 오히려 표현 여하에 따라서 다소간의 운치를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의 요시노*산의 와카와 같이 전체가 객관적인, 즉 경치를 표현했으나 그 안에 주관적이고 이지적인 구가 섞여 있는 와카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살풍경합니다. 또 같은 가인의 노래로서,

 

허무한 세상 한평생 살아가며 볼만한 것은

아라시*산기슭의 벚꽃뿐이어라.

(うつせみの 我世の限り 見るべきは 嵐の山の 櫻なりけり)

(うつせみの わがよのかぎり みるべきは あらしのやまの さくらなりけり)―주근옥 

 

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 노래도 아주 놀랄 만큼 이지적인 와카입니다. 아라시*산의 벚꽃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물론 객관적인 사실인데 그것을 이 노래에서는 이지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또 이 노래의 구법은 전체가 이지적인 취향의 경우에만 사용되어야 하는데, 이 와카처럼 객관적으로 노래해야 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것은 아주 속된 행위처럼 여겨집니다. 「볼만한 것은 (見るべきは)」이라는 말을 받아서 「벚꽃 뿐 이었거니(櫻なりけり)」라고 맺은 것도 아주 살풍경하다고 여겨집니다. 일생동안 아라시*산의 벚꽃을 보겠다고 노래한 점도 이상하고 속된 취향이며, 이 노래 역시 하나도 취할 것이 없는 와카입니다. 그저 손에 닿는 대로 말씀 올릴 따름입니다.

 

가인에게 드리는 글 (그 다섯 번째)

 

올려다 본 흰 구름은 뜻밖에도 기슭에 있고

하늘가엔 산뜻한 후지*의 봉우리가

(心あてに 見し白雲は 麓にて 思はぬ空に晴るる不盡の嶺)

(こころあてに みししらくもは ふもとにて おもはぬそらに はれるるふじんのみね)―주근옥 

 

위의 와카를 하루미[晴海]가 부른 노래라고 생각됩니다. 이 노래는 후지산 기슭에서 산마루를 올려다 봤을 때의 감흥을 즉흥적으로 부른 것입니다. 소생도 실제로 그와 같이 느꼈던 적이 있으므로 한때는 아주 취향이 높은 와카라고 생각했었으나,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 졸렬한 노래에 불과합니다.

먼저 저 산기슭이라고 하는 말의 여부도 그렇지만 올려다 본 곳은 적어도 산의 중턱 정도의 높이는 될 텐데 그것을 산기슭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습니다. 두 번째로 그 점은 그렇다 할지라도 ‘기슭에 있고(麓にて)’의 구가 아주 이지적으로 되어 있어 전혀 감흥이 일지 않습니다. 그냥 올려다 본 구름보다는 높이 있다는 정도로만 말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 후지산의 높고 웅장한 모습을 노래하려고 했다면 이보다 조금 더 힘차게 노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노래의 분위기는 부드럽고 약하여 도저히 후지산의 이미지를 자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토[几董]의 하이쿠에 ‘화창한 날에, 구름 위로 우뚝 선 눈 덮인 후지*산’이라는 하이쿠가 있는데 극히 평범하게 노래하긴 했지만 오히려 후지*산의 분위기가 위의 와카보다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해초 태우는 나니와*바닷가의 여덟 겹 안개

한 겹 안개는 아마도 해녀들 솜씨려니

(もしほ焼く 難波の浦の 八重霞 一重はあまの しわざなりけり)

(もしほやく なにわのうらの やえかすみ ひとえはあまの しわざなりけり)―주근옥 

 

게이추[契冲]의 노래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와카입니다만, 이와카의 품격이 낮다는 것은 조금 견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 노래가 여러 사람들 사이에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까닭은 말할 필요도 없이 ‘여덟 겹 한 겹(八重一重)’이라고 하는 어구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노래를 비난하려는 것도 다름 아닌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이처럼 동일한 와카에 있어서 동일한 어구를 가지고 어떤 사람들은 찬사하고 다른 사람은 크게 비난을 한 셈입니다. 여덟 겹 안개라고 한 것도 원래부터 여덟 겹으로 나누어서 안개가 일어난 것도 아니며 한 겹 안개라고 하는 말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또 첫 구에 ‘해초를 태우는(もしほ焼く)’이라고 노래하였기에 다음에 연기라고 노래해야 하는데도 그러지 않고 ‘해녀들의 솜씨(あまのしわざ)’라고 주관적으로 노래했기 때문에 이 와카는 더욱 저속해졌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노래하지 않고 ‘안개 위로 해초를 태우는 연기가 나부낀다’라고 평범하게 읊었다면 이처럼 졸렬하거나 싫증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어림짐작으로 어디 꺾어나 볼까. 첫서리 내려

그 속에 자취 감춘 흰 국화 꽃송이.

(心あてに 折らばや折らむ 初霜の 置きもどはせる 白菊の花)

(こころあてに おらばやおらむ はつしもの おきもどはせる しらぎくのはな)―주근옥

 

위 노래는 미쓰네[躬恒]의 노래로서 백인일수(白人一首)로도 잘 알려진 와카이므로 누구나 콧노래 부르듯 읊조리고 있지만, 단 한 푼어치의 가치도 없는 졸작입니다. 이 와카는 거짓된 취향의 노래인데, 이는 첫서리가 내린 정도로 흰 국화꽃이 보이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취향이 거짓이므로, 시의 분위기도 전혀 일지 않고 있습니다. 생각건대 이 와카에서는 앞서 말한 부분이 졸렬한 거짓인 까닭에 와카 역시 졸렬한 노래로 되었지만, 거짓이라 할지라도 알맞게 잘 꾸며진 거짓 구 속에는 정취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칠석까치가 놓아주는 다리에 하얀 서리가

내린 걸 보니 밤도 상당히 깊었나보다.

(鵲の わたせる橋に おく霜の 白きを見れば 夜ぞ更けのける)

(かささぎの わたせるはしに おくしもの しらきをみれば よるぞふけのける)―주근옥

 

위의 와카는 야카모치[家持]의 와카로서, 이 노래의 거짓에는 그 나름대로의 정취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미쓰네[躬恒]의 노래는 사소한 일을 멋대로 침소봉대하여 노래했을 뿐이므로 아주 무취미한 것인데, 위 야카모치의 와카는 전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공상하여 보여준 노래이기에 정취 있게 느껴집니다. 이처럼 거짓을 읊으려면 전적으로 사실이 아닌 당치도 않은 거짓을 읊거나, 그렇지 않으면 있는 사실 그대로 노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참새의 혀가 잘렸다(雀が舌をきられた)’거나 ‘너구리가 할머니로 둔갑했다(狸が婆に化けた)’와 같은 거짓에는 정취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은 서리가 내려서 흰 국화꽃이 보이지 않는다 라는 식으로 진지하게 사람을 속이려고 침소봉대하는 거짓말은 그야말로 살풍경합니다. ‘이슬이 떨어지는 소리(露の洛つる音)’라든가 ‘매화꽃 피니 달빛이 향내 난다(梅の月がにほふ)'와 같은 것을 노래하면서 즐거워하는 가인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이것들도 아무런 정취를 주지 않는 거짓입니다. 대체로 와카라고 하는 것은 한두 번은 좋지만 자주자주 거짓을 노래하게 되면 정취 있는 거짓도 흥이 깨져 버리고 맙니다. 하물며 재미없는 거짓은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이슬의 소리(露の音)’, ‘달빛의 향내(月のにほひ)’, ‘바람의 색(風の色)’ 따위는 이미 충분히 나왔으므로 이후의 와카에서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꽃의 향기’라도 하는 것도 대개는 거짓입니다. 벚꽃 등에는 특별히 향기가 없으며 ‘매화의 향기’에도 고킨 이후의 가인들이 노래하는 것처럼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봄밤 어둠은 정녕 속절없어라. 매화나무꽃

모습은 감출지언정 향기조차 감추랴.

(春の夜の 闇はあやなし 梅の花 色は見えねど 香やは隱るる)

(はるのよるの やみはあやなし うめのはな しょくはみえねど かやはこもるる)―주근옥

 

매화가 어둠 속에서 향기를 발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한데 31자로 길게 늘여서 와카로까지 노래한 수고는 황송할 따름입니다. 이러한 표현도 요즈음에는 진기한 표현이라고 무방하게 여길 수 있으나, 가인들이여 ‘어둠 속에서 매화 향내가 난다(闇に梅にほふ)’는 식의 취향은 이제 속히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둠 속의 매화뿐만이 아니고 보통의 향기를 노래한 와카만 해도 고킨슈에는 십여 수가 있으며, 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인들이 매화 향기를 노래한 와카만해도 엄청나게 많아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노래는 이제 적당히 그만 해두고, 향수나 향료를 쓴다면 모를까 그 밖의 다른 와카에선 일체 이 말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꽉 막힌 답답한 가인이라고 놀림을 받는 일은 피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조그마한 일을 크게 과장하여 노래하는 거짓이 와카를 부패시켜 온 가장 큰 원인의 하나로 보여집니다.

 

가인에게 드리는 글 (그 여섯 번째)

보내 주신 서면을 보니 어리석은 소생의 생각이 오해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상한 것은 보내 주신 서면 중 4, 5행 사이에는 서로 모순이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객관적 경치에 중점을 두고 노래해야만 한다’고 했으며 다음에는 ‘객관적으로만 노래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말 들이 쓰여 있는데, 이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소생은 객관적으로만 노래하라고 말씀드린 적은 없습니다. 객관에다 중점을 두라고 말씀드린 적도 없지만 이편이 소생의 부족한 생각에 가까운 것처럼 생각됩니다. ‘황국의 와카는 감정을 바탕으로 하여’ 운운 하신 점도 어찌된 일입니까. 시가뿐만 아니라 모든 문학이 감정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이지(理智)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와카라고도 문학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새삼스럽게 황국의 와카는 하고 말씀하시는 것은 와카 이외에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가인들의 발언인 것 같아 의아스럽습니다. ‘어느 때 누가 이지적으로 노래하면 와카가 될 수 없다고 정했느냐’고 하신 것도 놀라운 질문입니다. 이지적인 것은 문학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서고금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일치하는 정의입니다. 만약 이지적인 것도 문학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아마도 일본의 가인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객관이나 주관 또는 감정이나 이지라는 말에 대해서는 혹시 제 뜻을 오해하시고 계시지나 않는지요. 전적으로 객관적으로 노래한 와카라 할지라도 감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다리의 나간 위에 버드나무가 한 그루 바람에 날리고 있는 정경을 그대로 노래로 읊는다면 그 노래는 객관적이긴 합니다. 그러나 원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이러한 객관적인 정경을 아름답다고 느낀 결과이기 때문에, 감정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은 물론입니다. 단지 아름답다든가 멋지다든가 기쁘다든가 즐겁다든가 하는 말을 사용했느냐 사용하지 않았느냐 하는 차이에 불과합니다. 또 주관적이라고 말씀드린 말 속에도 감정과 이지에 대한 구별이 있습니다. 소생이 배척하려는 것은 주관 속의 이지적인 부분이지, 감정정인 부분은 절대로 아닙니다.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와카를 객관적인 와카에 비교해서 주관과 객관 사이의 차이를 가지고 우열을 논할 수 없기에 소생은 주관에다 중점을 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와카나 하이쿠(俳句)와 같은 짧은 시의 뛰어난 구에는 주관적 구보다 객관적인 구가 많다고 믿을 따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인 점에 중점을 둔다고 하는 말도 그런 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또 주관과 객관의 구별이나 감정과 이지의 한계는 실제에 있어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선악, 가부, 교졸(巧拙)을 평가하는 것도 원래는 확실하게 구별이 있는 것이 아니며, 극단적인 교(巧)와 극단적인 졸(拙)은 조금도 뒤섞이지 않는 것이지만 교와 졸의 중간에 있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교라고도 혹은 졸이라고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감정과 이지의 중간에 있는 것도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같은 용어로 같은 꽃이나 달을 읊어도 그것을 대하는 우리들과 옛날 사람들의 생각이 다른 것은 그다지 드물지 않은 일로서……’라는 말씀은 지당한 말씀입니다만, 그와 같은 말씀은 소생이 말하려는 것과는 추호도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지금은 옛날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오직 여기서는 동서고금에 통할 수 있는 문학의 기준(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는 표준을 말함)을 가지고 문학을 논평하려 할 뿐입니다. 옛날 범선을 가리켜 빠르다고 한 시대도 있었지만 증기선을 알고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범선이 느리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쓰라유키[實之]를 그 시대에 있어 와카에 능숙했다고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면, 전후의 가인들과 비교해서 쓰라유키를 칭찬한다면 소생도 구태여 반대하지 않겠습니다만, 단지 지금의 이야기는 역사적인 인물을 평하는 것이 아니고 문학적으로 그 사람의 와카를 평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일본 문학의 성벽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국가’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역대의 조쿠센슈(勅撰集)같은 것이 일본 문학의 성벽이라면 정말이지 믿음직스럽지 못한 성벽으로서 이처럼 허약한 성벽은 대포한 발로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생은 옛 와카를 완전히 파괴하여 없애 버리자는 생각이 아니라 일본 문학의 성벽을 조금 더 견고하게 쌓고 싶으며, 외국의 이방인들이 대포를 쏘거나 지뢰를 장치하여도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성벽으로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소생을 도와서 이 바램을 성취시켜 줄 만 한 분은 세상에 한 사람도 찾을 수 없기에 그래 수년 동안 울적한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요즈음에 들어 겨우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에 순서대로 정연하게 말씀드리지 못하고 앞뒤 분별없이 큰 목소리로 자신의 문학론만을 얘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 자신이 생각해도 미친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이므로,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면 필시 미친 사람이 하는 소리라고 헐뜯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문에 발표된 것만으로는 저의 어리석은 생각을 다 이해하시기 어려우리라 생각되기에 저의 부족한 작품이나마 예를 들어서 선배 여러분들의 평을 구하고 싶습니다. 다만 혹시라도 선배 여러분들의 노여움을 사서 발표를 금지 당하는 일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하는 점만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걱정, 두려움, 기쁨, 감격과 희망 때문에 심신이 시달려서 이전의 병든 몸은 더욱더 신경이 과민하게 되어 요즘에는 수면 부족까지 생겼으며, 남들에게 미쳤다거나 어리석다고 하는 비웃음을 살 것만 같습니다.

종래의 와카를 일본 문학의 토대로 하여 성벽으로 삼으려 하는 것은 활․검․창 등을 가지고 싸우려 하는 것과 같은 일로서 옛날이라면 모를까 메이지[明治] 시대에 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날 군함을 갖추고 대포를 사들이며, 거액의 돈을 외국에 쓰는 것도 필경은 일본을 견고하게 하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약간의 돈으로 사들일 수 있는 외국의 문학 사상 등을 수입하여 일본 문학의 성벽을 튼튼하게 하고 싶습니다. 소생은 와카에 있어서는 옛 사상을 파괴하고 신사상을 주문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와카의 용어는 아어(雅語)․속어(俗語)․서양어․한자어 등을 필요에 따라 사용할 계획입니다. 자세한 것은 후편에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덧붙여서 말씀드리자면 이세[伊勢]*의 신풍(神風), 우사[宇佐]*의 신칙(神勅) 등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만, 문학은 합리․비합리를 따질 만한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비합리는 문학이 아니라고 말씀드린 적은 없습니다. 비합리한 것이지만 문학적으로는 뛰어난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소생이 사실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합리․비합리, 사실․비사실 등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유화를 그리는 화가(畵家)는 반드시 사생(寫生)에 의지하여 그림을 그립니다만, 있는 그대로를 사생하는 것과 부분 부분의 사생을 모아 놓은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소생이 와카에서 말하려는 사실이란 것은 유화에서의 사생과 같은 것인데 이 점을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인에게 드리는 글 (그 일곱 번째)

전편에 다 말씀드리지 못했던 일을 이제 조금 덧붙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대가나 옛 스승들의 하이쿠라 하면 이내 저속한 것들을 연상합니다. 마찬가지로 와카라고 하면 바로 진부하다는 것을 연상하는 것이 근래의 관습으로, 끝내는 와카라고 하면 진부하다는 것을 생각하게끔 되었습니다. 와카 사회에서는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겠습니다만, 가인이 아닌 사람들은 대개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때로는 와카에 대하여 비방을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그러면 와카를 어떻게 개량해야 할 것인가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고개를 흔들면서 ‘와카는 이미 완전히 부패하였는데 어떻게 개량할 방법이 있겠는가, 두고 볼 수밖에’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모습은 명의도 두 손을 들어 버린, 죽음을 눈앞에 둔 병자를 대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실제로 와카는 얼굴은 창백하고 호흡도 이제 막 끊어지려고 하는 병자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생각은 그런 사람의 생각과는 전혀 다릅니다. 비록 와카의 정신이 쇠퇴하여 그 껍데기만 아직 남아 있을 뿐이나, 지금이라도 그 정신만 바꾸어 놓으면 건전한 와카가 되어 다시 문단에서 각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와카의 회복이 분명한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는데 어떤 사람들은 와카를 성급하게 숨이 끊긴 병자처럼 여기고 있는데, 이는 와카의 부패가 극심한 것에 질려서 얼핏 한 번 보고는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와카의 부패가 얼마나 심한가 하는 것은 이 점으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와카의 부패라고 하는 것은 취향이 변하지 않은 데 그 원이 있으며, 또 취향이 변하지 않는 것은 와카의 용어가 적다는 점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취향의 변화를 바란다고 한다면 반드시 용어의 영역을 확장하지 않으면 안 되며, 용어의 영역만 확장되면 취향도 변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소생을 가리켜 와카의 영역을 좁게 하는 자라고 말한 것은 오해이며, 오히려 조금이라도 와카의 영역을 넓히고자 하는 것이 소생의 목적입니다. 그렇기는 하나 아무리 영역을 넓게 한다고 할지라도 비문학적 사상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비문학적 사상이란 이지적인 성격을 말합니다.

외국어를 사용하고, 외국에서 통용되는 문학 사상을 받아들이라고 말씀드린 점에 대하여 소생을 일본 문학을 파괴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분도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소생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설사 중국의 한시를 짓고 서양의 시를 쓴다하여도, 혹은 산스크리트 시를 쓴다고 할지라도 일본인이 쓴 이상 이것들은 일본 문학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당나라 제도를 본떠서 위계와 복색을 정하고 당나라 식의 의관을 입었다 할지라도 일본인이 조직한 정부는 일본 정부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군함을 사고 독일의 대포를 사서 그것으로 전쟁에서 이겼다 할지라도 그것을 수행한 사람이 일본 사람이라면, 일본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문물을 사용하는 것이 몹시도 유감스러워서, 일본 고유의 문물만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그 뜻에는 찬성을 합니다만, 일본 문물만으로는 아무래도 어떤 일을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문학에도 마, 매, 접, 국, 문(馬, 梅, 蝶, 菊, 文)과 같은 말을 비롯하여 일체의 한자어를 금한다면 어떻게 될까요.『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마쿠라소시[枕草子]』이하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배척해 버린다고 한다면 일본 문학에는 무엇이 남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구태여 와카만큼은 일본 고유의 언어로 짓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마음이겠으나 그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까지 규제하려고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일본인 모두가 옛날 고유의 언어만을 사용하게 된다면 일본은 성립할 수 없으며, 일본 문학자가 모두 일본 고유의 언어만 사용한다면 일본 문학은 파괴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 중에는 마, 매, 접, 국, 문(馬, 梅, 蝶, 菊, 文)과 같은 말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일본어로 간주할 수 있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 말들도 아주 오랜 옛 시대에는 그 무렵 사람들이 새로 수입하여 사용한 말로서, 앞서의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당시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면 이 말은 배척했을 것입니다. 몹시도 가소로운 자가당착입니다. 설사 고식론자들에게 한발 양보해서 옛날 세상에서 사용했던 말만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왕조 시대에 사용했던 한어만이라도 충분하게 사용한다면 그래도 와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여지는 다소간 있습니다. 그런데 와카의 언어와 이야기의 말은 자연히 구별되며, 이야기에 있는 말 중에는 와카에 사용할 수 없는 말들이 많다는 식으로 앞서 말한 가인들은 말할 것입니다만, 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입니까. 어떠한 말이라도 아름다운 뜻을 나타내는 데 충분한 것이라면 이들 모두 와카의 언어가 될 수 있으며, 이것들을 제외하고는 와카의 언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한자어도, 서양어도, 문학적으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모두 와카의 언어가 될 수 있습니다.

 

가인에게 드리는 글 (그 여덟 번째)

졸렬한 와카의 예를 앞에서 들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뛰어난 와카의 예를 들기로 하겠습니다. 졸렬한 와카나 좋은 와카의 예를 네다섯 수정도 든다고 해서 저의 부족한 생각을 다 나타낼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들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 생각하여 몇 수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먼저 『긴카이와카슈[金槐和歌集]』부터 시작할까 합니다.

 

전통의 살을 추스르는 무사의 손바닥 위로

싸락눈이 튀어나는 나스*의 시노하라*

(武士の 矢並つくる 小手の上に 霰たばしる 那須の篠原)

(もののふの やなみつくる こてのうえに あられたばしる なすのしのはら)―주근옥

 

위의 와카는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모아 칭찬하고 있기에 지금 새삼스럽게 끄집어내어 말하지 않아도 되겠으나, 그래도 여러분 중에는 아직 알지 못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기에 우선 말씀을 드립니다. 위 와카의 취향을 누구나 멋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 이러한 취향의 와카는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이 노래가 힘찬 노래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와카의 구법은 다른 와카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드문 구법으로서, 이 노래의 특색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보통의 와카는 ‘なり、けり、らん、かな、けれ’등과 같은 조사, 조동사들이 많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명사가 적은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이 와카는 명사가 아주 많은 반면, 조사는 ‘の’가 3회, ‘に’가 1,2회에 불과하며, 동사도 가장 짧은 현재의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꼭 필요한 언어만을 사용한 충실한 와카는 실로 드문 편입니다. 『신고킨슈[新古今集]』의 와카 중에도 이 와카처럼 언어를 충실하게 사용하고, 구법이 긴밀한 와카가 있습니다만, 그래도 이 와카처럼 언어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만요의 와카는 언어가 극히 적으며 간단하다는 점에서 뛰어난데, 사네토모[實朝]의 와카는 한편으로 이러한 만요의 와카를 따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처럼 전혀 새로운 노래를 이루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 역량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또한 오랜 장마 끝에 날이 개이기를 기원하는 와카 중에

때에 따라서 지나쳐도 백성들이 탄식합니다.

팔대용왕이시여 비를 그쳐주소서.

(時により すぐれば民のなげきなり八大龍王雨やめたまへ)

(ときにより すぐればたみの なげきなり はちだいりゅうおう あめやめたまへ)―주근옥

 

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아마도 세상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와카로 알고 있습니다만, 소생이 아주 아주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어조가 이처럼 놀란 만큼 힘찬 와카를 다시 찾아보기는 어렵겠지요. 팔대용왕(八大龍王)을 질타하고 있는 듯한 구에는 용왕도 두려워서 엎드리는 듯한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팔대용왕이라고 ‘팔(八)’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는 점과 ‘비를 그쳐주소서’라고 4․3조의 율조(律調)를 사용한 점 들이 모두 이 와카의 기세를 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처음 3구는 무척이나 졸렬한 구이긴 하지만, 그것을 단숨에 읊어 내려 졸렬하게 된 점이 오히려 진솔하고 거짓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기에, 비가 개이기를 비는 와카로서는 아주 적당하다고 여겨집니다. 사네토모는 원래 좋은 노래를 지으려고 이 노래를 읊은 것이 아니라, 단지 진심을 읊으려고 한 것이 오히려 아주 좋은 노래로 만들어진 것이겠지요. 이러한 점은 손끝의 재주를 가지고 언어를 다루는데 만 집착해 왔던 가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입니다. ‘3구 나누기’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만, 마침 이 와카가 그 좋은 예이므로 ‘3구 나누기’에 대하여 한마디 하겠습니다.

‘3구 나누기’의 와카를 읊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은 지나치게 옛 가론에 집착한 것으로서 논할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만, ‘3구 나누기’의 와카는 후반부가 가볍게 된다는 결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결점을 메우기 위하여 후반 두 구를 ‘지아마리쿠[字余り句]’로 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이 노래도 그런 와카 중 하나입니다.(전에 예로 든 오에 지사토[大江千里]의 와카도 역시 그런 와카의 예로서, 그 밖에도 그런 와카는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말을 못하는 온갖 짐승조차도 어여쁘구나

자식을 괴는 부모 마음 한이 없기에

(物いはぬ よものけたもの すらだにも あはれなるかなや親の子を思ふ)

(ものいはぬ よものけたもの すらだにも あはれなるかなや おやのこをおもふ)―주근옥

 

위와 같은 와카는 특별히 눈에 뛸 만한 취향은 아무 것도 없으나, 단숨에 끝까지 노래한 점에 오히려 진심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지아마리쿠[字余り句]’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자면 이 와카는 제5구가 ‘지아마리쿠’이기 때문에 아주 흥취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지아마리쿠’라고 하면 부득이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렇제 않습니다. ‘지아마리쿠’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세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 ‘지아마리쿠’를 사용했기 때문에 오히려 분위기가 살아나는 경우와 ‘지아마리쿠’를 사용했기에 시적인 분위기가 망쳐진 경우, 그리고 ‘지아마리쿠’를 사용하지 않아도 무방한 경우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위의 와카는 ‘지아마리쿠’를 사용했기 때문에 분위기가 살아난 노래입니다. 만약에 ‘思ふ’라는 말을 줄여서 ‘もふ’라고 읊는다면 와카의 취향은 무미건조하게 되므로, 여기서는 제 5구를 반드시 여덟 자인 ‘지아마리쿠’로만 노래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이 와카의 마지막 구만을 강조하여 ‘親の子を思ふ’라고 짧게 말했기 때문에 부모의 애절한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만약 ‘親の’를 제 4구 속에 넣고 마지막 구를 ‘子を思ふかな’ ‘子を思ふらん’등으로 노래했다면 앞서의 와카처럼 부드러운 율조가 되어 부모의 애절한 사랑을 나타낼 수가 없게 되고, 이 노래는 평범한 와카가 되었을 것입니다.

가인들이 예로부터 조사를 남용한 것은 송 시대의 사람들이 허자(虛字)를 사용하여 허약한 시를 지은 것과 같습니다. 사네토모와 같은 사람은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에 걸쳐서 한 사람만 존재할 뿐입니다. 이전부터 소생은 객관적인 시만을 다루고 있다고 오해를 받아왔습니다. 다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와카의 예로도 짐작할 수 가 있을 겁니다. 맨 앞의 와카는 완전히 객관적인 와카이나, 뒤의 두 수는 완전히 주관적인 와카로서 소생은 이 와카들을 더불어 애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세 수의 와카들은 힘차게 노래한 와카들로만 되어 있기에 어쩌면 힘찬 와카만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앞으로는 더 많은 와카의 예를 들겠으니 기다려 주셨으면 합니다.

 

가인에게 드리는 글 (그 아홉 번째)

와카를 일일이 평을 하는 것도 번잡스럽기에 우선 『긴카이와카슈[金槐和歌集]』의 와카 두세 수를 예로 들고서 다른 와카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산이 무너지고 바닷물이 마르는 세상이라도

님에게 두 마음을 내 어이 품을소냐.

(山は裂け 海はあせなん 世なりとも 君にふた心 われあらめやも)

(やまはさけ うみはあせなん よなりとも きみにふたこころ われあらめやも)―주근옥

 

하코네*산길 내 넘어와서 보니 이즈* 바닷가

작은 섬에 부딪치는 파도까지 보인다.

(箱根路を わが越え来れば 伊豆の海や おきの小嶋に 波のよる見ゆ)

(はこねじを わがごえくれば いずのうみや おきのおじまに なみのよるみゆ)―주근옥

 

언제까지나 세상은 영원하라. 작은 뱃줄 끄는

어부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댄다.

(世の中は つねにもがも なぎさ漕ぐ 海人の小舟の 綱手かなしも)

(よのなかは つねにもがも なぎさこぐ かいじんのこぶねの つなでかなしも)―주근옥

 

큰 바다에서 해변가로 밀려오는 거친 파도는

갈라지고 부서지고 깨지며 흩어지누나

(大海の いそもとどろに よする波 われてくだけて さけて散るかも)

(たいかいの いそもとどろに よするなみ われてくだけて さけてちるかも)―주근옥

 

‘하코네[箱根]* 산길’을 노래한 와카는 몹시 흥취가 있으나 이러한 시상은 고킨을 통하여 널리 알려져 온 것이므로, 사네토모[實朝]가 이를 노래했다 하여도 그리 놀랄 것은 못 됩니다. 단지 ‘이 세상은’하고 노래한 와카처럼 옛 뜻과 옛 가락으로 된 와카를, 「만요슈[萬葉集]」이후에 특히나 화려한 것을 다투어 노래했던 신고킨 시대에 읊을 수 있었던 사네토모의 기량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새삼스럽게 여기서 사네토모가 와카에 조예가 깊다는 사실을 얘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큰 바다에서’와 같은 와카도 사네토모가 처음으로 시작한 작법일 것입니다.

「신고킨슈[新古今集]」로 옮겨서 두세 수 정도 예를 들자면,

 

나고* 바닷가 봄 안개의 틈으로 바라다보니

저녁 해 씻어주는 바닷가 하얀 물결

(なごの海の 霞のまより なかむれば 入日を洗ふ 沖つ白波)

(なごのうみの かすみのまより なかむれば いりひをあらふ おきつしらなみ)―주근옥

 

이 와카처럼 객관적으로 경치를 잘 나타낸 것은 신고킨 이전에는 없을 것으로, 이와 같은 와카는 『신고킨슈』의 특색으로서 생각할 만한 노래입니다. 다만 애석한 것은 ‘봄 안개의 틈으로(霞のまより)’라는 구가 흠이 되고 있습니다. 온 천지간에 봄 안개가 자욱한데 그 틈사이라는 말이 우습거니와 설사 틈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런 말은 이 와카의 취향에는 필요치 않습니다. 저녁 해도 바다도 안개 너머로 어렴풋이 보인다고 했다면 취향이 생겨났지요.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새벽 달빛 속에서

단풍잎 흩날미며 부는 산바람이여

(ほのぼのと 有明の月の 月影に 紅葉吹きおろす 山おろしの風)

(ほのぼのと ありあけのつきの つきかげに もみじふきおろす やまおろしのかぜ)―주근옥

 

이 와카도 객관적으로 부른 와카로서, 경치가 쓸쓸하면서도 아름답게 나타나 있는 데다가, 같은 말을 겹쳐서 어조를 맞춘 것이 새롭습니다.

 

나만큼이나 외로운 이 또 있다면 한겨울 산촌

초가집을 나란히 하고 살아갈 텐데

(さびしさに 堪へたる人の またもあれな 庵を幷べん 冬の山里)

(さびしさに たへたる人の またもあれな いほをならべん ふゆのやまざと)―주근옥

 

사이교[西行]의 마음은 이 와카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속세 떠난 이 몸도 정취는 알 수 있어라(心なき身にも哀れは知られけり)’라고 노골적으로 읊은 와카가 세상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반면, 오히려 이 노래를 아는 이가 적은 것은 애석한 일입니다. ‘초가집을 나란히 하고 살아갈 텐데 (庵を幷べん)’라고 노래한 곳에 나타나 있는 참신하면서도 정취 있는 취향은 사이교[西行]가 아니면 읊기 어려울 것입니다. 특히 한겨울이라고 노래한 것도 역시 보통의 가인들의 솜씨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바쇼[芭蕉]가 새로이 하이카이[俳諧]를 부흥시켰습니다만, 적(寂)의 경지에서도 ‘초가집을 나란히 하고(庵を幷べん)’라는 구보다 더 깊게, 그리고 계절과의 관계에서도 ‘한겨울의 산촌(冬の山里)’이라는 구보다 더 깊은 경지를 깨닫고 노래하지는 못했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잠자리 위로 가지를 받쳐주는 떡갈나무의

너른잎에 싸락눈 튀는 소리가 나네

(閨の上に かたえさしおほひ 外面なる 葉廣柏に 霰ふるなり)

(ねやのうえに かたえさしおほひ げまんなる はひろかしわに あられふるなり)―주근옥

 

이 와카도 객관적인 노래입니다. 전반이 3구가 복잡한 취향을 나타내고 있어 약간은 혼잡스럽게 되었습니다만, 너른 떡갈나무 잎 위로 싸락눈이 튄다는 취향은 몹시도 정취가 있습니다.

 

산기슭 마을 숨어 사는 사람을 찾아갔더니

주인은 기척 없고 산바람만 불어오네.

(岡の邊の 里のあるじを 尋ねれば 人は答へず山おろしの風)

(おかのへんの さとのあるじを たずねれば ひとはこたへず やまおろしのかぜ)―주근옥

 

취향이 있으며, 구법도 탄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와카의 4구를 ‘주인은 보이지 않고(人は答へず)’라는 식으로 다음에 연속되지 않게 노래했다면 아무런 취향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잔물결이여 히라*산이 바람이 바다로 부니

낚시하는 어부의 소매가 펄럭인다.

(さざ波や 比良山風の 海吹けば 釣するあまの 袖かへる見ゆ)

(さざなみや ひらさんかぜの うみふけば つりするあまの そでかへるみゆ)―주근옥

 

위 와카는 실경을 그대도 노래했을 뿐 아무런 기교도 부리지 않은 점이 오히려 흥취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신바람이여. 비쭈기나무 흔드는 이세*의 신궁

천황의 만수무강 계속되길 비누나.

(神風や 玉串の葉を とりかさし 內外の宮に君をこそ祈れ)

(かみかぜや たまぐしのはを とりかさし うちどのぐうに きみをこそいのれ)―주근옥

 

신에게 바치는 와카라고 하면 ‘천년만년 오래도록(千年の八千年の)’하는 식으로 정해진 상투어를 늘어놓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이 와카는 확고하게 신에게 말씀드리고 있는데, 이 점이 오히려 신의 마음에 합당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가 긴장되어 있는 점과 조금 객관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점 등은 주의해서 음미해 볼 만하여 ‘신바람이여(神風や)’라고 한 다섯 글자도 뚜렷한 이유는 없지만 몹시도 좋게만 들려옵니다.

 

부처님이여. 절 기둥감을 베려고 산에 들어가려니

한량없는 자비를 제게 베풀어 주옵소서

(阿褥多羅三藐三菩提の佛たち わが立つ杣に 冥加あらせたまへ)

(あのくたら さんみゃくさん ぼだいのほとけたち わがたつそまに みょうがあらせたまへ)―주근옥

 

몹시 뛰어난 와카입니다. 와카에서 이처럼 긴 구를 사용하는 일은 예난 지금이나 없었던 일로서, 이 노래를 읊었던 가인도 그러하지만 이 와카를 조쿠센슈[勅撰集] 속에 실었던 편찬자의 용기도 칭찬할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제 2구가 열 자나 되도록 길게 되어 있기에 그렇게 긴 구를 한 번에 다 읊어 내릴 수 없으며, 제 5구를 아홉 자로 한 것은 고의적은 아니겠지만, 여기에서는 일부러 아홉 자 정도로 길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와카의 5구를 일곱 자로 노래했다고 한다면, 앞 구의 열 자에 비해서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와카의 처음 부분에 글자가 넘치는 구가 있었기 때문에, 뒷부분에도 글자가 넘치는 구를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만약 글자가 넘치는 구는 한 구라도 적은 것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넘치는 구의 취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사람이아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인에게 드리는 글 (그 열 번째)

‘선배 숭배’라는 것은 어느 사회에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배에 대하여 그들이 남긴 공적에 상당하는 경의를 나타낸다는 뜻이라면 지당한 일이겠으나, 정도에 벗어나서 그 선배의 역량과 기술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채 무턱대고 숭배만 한다면 아주 어리석은 일입니다. 시골 사람들은 오우타도코로[御歌所]라고 하면 훌륭한 사람들이 모여 있으며 오우타도코로의 우두머리라고 하면 천하 제일가는 가인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의 와카라고 하면 그것을 읽기 전부터 훌륭한 와카라고 짐작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로서, 옛날에는 소생도 그런 무리들 중 하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굴 붉힐 정도로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오우타도코로라고 해서 훌륭한 사람들이 모여 있을 리 없으며 오우타도코로의 우두머리라고 해서 반드시 제일가는 가인이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리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가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전혀 없는 시대이지만, 그래도 오우타도코로의 사람들보다 나은 가인들이라면 민간인들 중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촌사람들이 원로들을 숭배하고 대신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하여 정치적인 역량이나 견식도 원로대신이 제일 훌륭하다고 맹신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신문 기자들이 대신을 비방하는 것을 보면 ‘아무리 신문쟁이가 큰소리로 나팔을 불지라도 대신은 친임관(親任官)이고, 신문쟁이는 가난뱅이에 불과할 뿐이므로 대신과는 천양지차가 난다’는 식으로 신문기자들을 크게 꾸짖습니다. 조그만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원로들이 얼마나 무능한가 하는 점이나 대신은 돌아가면서 하는 자리로 신문기자가 대신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러한 점을 그들에게 알려 준다 해도, 시골의 서생들이 그런 점을 전혀 개의치 않고 무조건 원로들을 숭배하는 점에는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민간인 사회에서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정치적인 문제도 아직 그럴 정도이니까. 지금까지 은거하고 있던 와카 사회에서 노인 숭배를 하는 촌사람이 많다는 것도 그다지 이상하지는 않습니다만, 이 노인 숭배의 폐단을 고치지 않으면 와카의 진보는 불가능합니다. 와카는 평등하고 무차별한 것으로 와카에 있어서는 노소와 귀천이 없습니다. 와카를 읊으려는 소년이 있다면 노인들을 개의치 말고 자기가 좋을 대로 와카를 읊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메이지[明治] 시대의 한시단(漢詩壇)이 흥성하고 있는 것은 노인들을 제쳐두고 청년 시인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이쿠[俳句]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는 것도 진부하게 노래하던 하이진[俳人]들을 상관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읊었던 결과임에 틀림없습니다.

엔고[縁語]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와카의 폐단으로, 엔고도 경우에 따라서는 좋겠지만 보통은 엔고와 이중 의미가 생기기 때문에 와카의 취향이 손상되는 것입니다. 설사 엔고의 사용으로 그 표현이 잘 나타났을 경우에도 이 엔고로 얻어지는 미(美)는 미 중에서도 하등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와카 속에 엔고를 사용하기를 좋아하는 가인은 멋대로 말재주만을 늘어놓고 싶어 하며 잘 알지 못하면서도 난체하는 사람으로서, 본인은 득의양양하겠지만 옆에서 보면 품격이 낮은 점이 아주 많습니다. 엔고로써 재주를 자랑하기보다는 진솔하게 노래하는 것이 훨씬 품격이 높게 보인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와카라고 하면 언제나 언어에 대한 논쟁이 나오고 있는데 이는 참으로 곤란합니다. 와카에선 보탄[牡丹]이라고 하지 않고 후카미구사[深見草]라고 읊어야 옳다든지, 이 말은 이렇게 말하지 않고 반드시 저렇게 말해야 하는 것이 관습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제 생각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제 생각은 옛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말하려는 것이 아니며, 관습에 따르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취향을 될 수 있는 대로 다른 사람도 잘 알 수 있도록 표현하려는 것이 원래의 제 참뜻입니다. 따라서 속어(俗語)를 사용하는 문제도 그것이 미적 감각을 나타내는 데 적당하다면 아어(雅語)를 버리고 속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예부터 전해 온 관습에 따라 노래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관습이라서 그것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미를 나타내는 데 적당하기 때문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인들의 관습이기에 따라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그 관습 역시 고인들이 새롭게 사용하기 시작한 것들이 많습니다.

보탄과 후카미구사와의 구별에 대하여 말씀드리자면, 소생 등은 후카미구사보다는 보탄이라고 하는 쪽이 모란의 이미지를 빠르고 뚜렷하게 나타내 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보탄이라고 하는 편이 강하게 와 닿아, 실제의 모란의 크고도 늠름한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려줍니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모란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려 한다면 보탄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은 경우가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새롭고 진기한 것을 읊으라고 하면, 기차나 철도 등과 같이 소위 문명의 기계들을 끄집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이것은 무엇인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명의 기계들은 대다수가 풍류가 없는 것들로서, 와카 속에서 노래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이것들을 노래하려고 한다면 다른 취향이 있는 것들과 배합하여 노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다른 어떤 풍류 있는 것들과 같이 노래하지 않고서 ‘철로 위로 바람이 분다’라는 식으로 노래를 하면 와카는 아주 살풍경하게 되고 맙니다. 적어도 철로 옆에는 제비꽃이 피어 있다든가, 또는 기차가 지나간 후에 양귀비꽃이 떨어진다든가, 억새꽃이 흔들린다는 식으로 다른 것과 섞어서 노래하면 어느 정도는 보기 좋게 될 것입니다. 또 살풍경한 것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유채꽃 너머로 기차가 보인다든가, 여름 들녘 멀리 기차가 달린다고 하는 것도 살풍경한 모습을 지워주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상 여러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을 그대로 모아서 말씀드렸습니다. 다 못한 나머지 이야기는 다른 날 자세하게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日本」, 明治 31=1898, 2. 12~3. 4, 10회. 32세)

 

「 가인(歌人)에게 드리는 글 」 해제

「가인에게 드리는 글」은 1898년 2월 8일부터 일본신문(日本新聞)에 10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와카 혁신을 주장한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의 가론서이다. 마사오카시키(1867~1902)는 35년이라는 짧은 일생을 살면서 하이쿠[俳句], 와카[和歌], 신체시(新體詩), 한시(漢詩), 소설, 사생문, 평론, 수필 등 다방면의 문학 활동을 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기고 있는데,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하이쿠, 와카의 혁신 운동을 일으켜 근대적인 하이쿠, 와카의 기초를 쌓았다는 점이다. 당시의 와카는 고킨초[古今調]의 진부한 와카들만 크게 성행하였으며 가단(歌壇) 역시 궁중의 오우타도코로[御歌所]를 거점으로 하고 있는 게이엔[桂園]파들에 의해 압도되었는데, 이와 같은 분위기에 불만을 품고 와카의 부정론(否定論)에 이어 개량론과 같은 새로운 움직임이 나왔다.

시키[子規] 역시 하이쿠, 와카의 혁신 운동에 뜻을 두고 있었는데, 1892년 일본신문사에 입사하여 「다쓰사이쇼오쿠하이와[獺祭書室俳話]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하이쿠, 와카의 혁신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그는 계속하여 「바쇼조단[芭蕉雜談]」, 「하이카이다이요[俳諧大要]」,「하이쿠몬도[俳句問答]」등 구파(舊派) 하이진(俳人)들을 공격하는 하이와[俳話], 하이론[俳論] 등을 발표하였다.

1894년에는 하이쿠 혁신운동에 이어 와카 혁신의 뜻을 품고 「가인에게 드리는 글」은 하이쿠 혁신을 수행하면서 얻은 바를 와카에 응용한 와카 혁신론으로, 그 내용은 크게 당시 와카의 쇠퇴된 모습과 와카 혁신을 위한 방안의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를 설명하면 먼저 그를 쓰라유키[實之]를 비롯한 당시의 게이엔[桂圓]과 가인들과 그들의 고킨초[古今集] 와카들을 크게 비판하고, 이들 와카의 진부함과 타락상을 신랄하게 비평하였다. 다음으로 이렇게 진부하고 타락된 와카의 혁신을 위하여 만요초[萬葉調] 중심의 개혁론을 주장하였으며,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실물적 사생을 도입하고 용어의 영역을 확대하고 취향, 재료, 언어들을 가능한 한 넓고 자유롭게 사용해야 한다는 점 등을 역설함으로써 와카의 새로 변화된 취향을 시도했다.

선배 가인들과 기성 가단에 종횡무진으로 공격을 가했던 본 가론이 발표되자, 그 내용이 너무도 과격하고 혁신적이었기에 많은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비록 내용에 있어 많은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본 가론은 진부하고 관념에 빠져 있던 당시의 가인들과 가단에 커다란 경종을 울려 주었으며, 와카의 부정론을 극복하고 와카를 독립된 문학으로 확립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사오카 시키 연표

 

하이쿠선집(俳句選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