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동주의(渦動主義; Vorticism)

 

문예운동 2020. 11. 15. 겨울호(통권 제148호)

 

에즈러 파운드(Ezra Pound) / 주근옥 역

 

사람들이 언어에서 양상이나 측면(planes)이나 색채(colours) 조합의 중명사(中名辭)로 정서를 수용하고 운반하는 것은, 음악에서 음표의 조합으로 그러한 정서를 수용하고 운반하는 것보다 더 엉뚱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제안이 자명하다고 생각한다. 휘슬러가 몇 해 전에 그 정도의 언급을 했고, 페이터는 모든 예술은 음악의 조건에 접근한다고 선포했다. 내가 이것을 언급할 때마다 나는 ,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왜 이것은 미래주의가 아닙니까?” “왜 안 됩니까?” 그리고 특히, “도대체 당신의 이미지즘의 시와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라고 하는 폭풍처럼 밀려드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친절하게, 정중하게, 사려 깊은 산문으로 설명하겠다. 우리는 모두 아버지의 시체를 어디든 가지고 다닐 수는 없다.”고 하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신앙만큼의 미래주의자들이다. 그러나 ‘미래주의’가 예술 안으로 진입하면, 최대공약수가 된다. 인상주의의 후예가 된다. 일종의 가속상각(加速償却)이다. 거기에는 피카소와 칸딘스키로 이어진, 즉 큐비즘과 표현주의로 이어진 혈통이 있다. 신인상주의나 급진적 인상주의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동시성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들에 의해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도 없다. 아마 다른 욕구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 세 가지 예술을 동시에 일반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내가 매우 긴밀하게 연관된, 다시 말해서, 와동주의의 시를 포함한 와동주의 예술의 역사를 간략히 언급한다면, 아마 더 명료해질지도 모른다. 와동주의는 이러이러한 회화와 조각 그리고 운문에서의 이미지즘으로 선포했었다. 나는 이미지즘을 설명할 것이다. 그런 다음 어떤 현대(modern) 회화와 조각과 관련된 그것의 내부를 파헤치는 것으로 진전할 것이다.

어쨌든 알려진 한에 있어서, 이미지즘은 주로 창작보다 오히려 문체적 비평 활동으로 알려져 왔다. 왜냐하면, 이것이 발표의 민첩성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언제나, 그리고 필연적으로, 예술가들의 실제적 사상보다 몇 해 뒤져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거의 시의 일부로, 꼭 시의 일부로서의 정서의 발로로 받아들인다.

한 편으로, 음악, 순수한 멜로디가 마치 파롤(speech)과 같은 일종의 시가 존재한다. 다른 한 편으로, 회화 또는 조각이 마치 파롤 안으로 갑자기 밀려드는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시가 존재한다. 첫 번째 종류의 시는 오랫동안 서정시로 호칭되어 왔다. 사람들은 서정시,’ ‘서사시그리고 교훈시를 식별하는데 쉽게 습관화되었다. 사람들은 드라마 또는 서정시가 아닌 장시에서 서정적추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분류는 문법서와 교과서에 존재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가르쳐왔다.

또 다른 종류의 시는 서정시만큼 오래되었고 그것만큼 고결하지만, 최근까지 아무도 명명하지 않았다. 이비쿠스(Ibycus)와 나의 시 유철(劉徹; Liu Ch'e)이미지를 나타냈다. 단테는 이러한 능력으로 위대한 시인이 되었고, 밀턴은 그것의 결핍으로 다변가가 되었다. ‘이미지는 수사(rhetoric)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 수사는 눈앞의 청중을 속이기 위하여 보잘것없는 것을 겉치장하려는 술책이다. 일반적 범주를 위해서는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계략적 설득으로서의 수사와 진리의 분석적 고찰을 구별하고 있다. 1912년에서 1914년까지의 임계적(critical)’ 활동은 시를 수사가 없는 산문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오늘날의(contemporary) 시가 그러한 수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믿는 다시 말해서 돈키호테적 공상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탕달은 그의 소설 연애론에서 산문의 필요성을 형식화했다.

서정시와 이미지즘의 시 그것들을 꼭 비교해야 한다면, 이미지즘의 시가 믿지 않는, 루이 14세 스타일의 기품으로서의, 그리고 서정시가 시적이라고 하는 꾸밈으로서의 자잘한 그 모든 소지품(수사)으로서의, 그 신화가 정확성과 마음의 움직임을 명확하게 포착한 관념을 제공할 때 아주 낮은 수준의 산문이 된다. 하지만 이미지즘의 시는 오로지 논리적으로 명석 판명한 것에 의해서만 작동한다.

 

19133월 공표된 이미지스트의 신념의 교의는 다음과 같다.

. 주격이든 목적격이든 사물의 직접적인 취급.

. 표현에 기여하지 않은 단어는 절대로 사용하지 말 것.

. 리듬에 관하여: 박절기의 시퀀스가 아닌, 음악 프레이즈의 시퀀스로 시를 쓸 것.

 

초보자들에게 일련의 대략 40여 개의 계고가 뒤따르나, 여기서는 필요 없다.

 

부조(浮彫) 형제(flenites Relief). (Jacob Epstein)

예술은 정말 모종의 공통 인연, 모종의 상호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정서나 주체는 어떤 특수 예술 속에서 가장 적합한 표현으로 발견된다. 최고의 유익 가치가 있는예술작품은 그것을 알기 쉽게 하는 다른 여러 종류의 예술의 수많은 작품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다. 하나의 훌륭한 조각품은 수많은 시의 핵심으로 존재한다. 한 편의 시는 심포니 악보의 총보(總譜)이다. 그것을 표현하는데 수많은 회화를 필요로 하는 음악이다.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또는 엡스타인의 조각 부조(浮彫) 형제(flenites Relief)의 유사품은 없다. 프랑수와 비용의 형제의 회화는 없다. 그러한 작품은 우리가 최초의 폭주(intensity: 輻輳, 집중, 긴장)”의 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소정의 주체 또는 정서는 예술가에게, 또는 그것을 가장 심오하게 그리고 그가 그의 예술 속에서 그것으로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기 전에 가장 집중적으로 알아야만 하는 그런 예술가에 속한다. 화가는 일몰에 대해 작가보다 더 많이 알아야만 한다. 만약 그가 캔버스 위에 그것을 옮겨놓고자 한다면. 그러나 시인이 고동색 망토를 걸친 여명을 읊을 때, 그는 화가가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표현한다.

서언에서 나는 절대 리듬을 믿었던 귀도 카발칸티에게 언급했다. 나는 모든 정서와 모든 정서의 국면은 어떤 단조로운 음조(toneless)의 프레이즈를, 그것을 표현하는 어떤 리듬-프레이즈를 가지고 있다고. (이 소신은 자유시와 음량적 운문의 실험을 유도한다). 일종의 영구불변의 메타포에 대한 유사소신을 포유하는 것은,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심원한 의미에서 상징주의. 그것은 필연적으로 영구불변의 소신이 아니라, 영구불변의 지시명령이다.

이미지즘은 상징주의가 아니다. 상징주의자들은 연상(association),” 즉 일종의 인유(引喩), 거의 풍유(諷喩)로 처리한다. 그들은 상징주의를 단어의 지위로 격하시켰다. 그들은 그것을 환유(換喩, metonomy)의 형식으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환유는 십자가(cross)”고난(trial)”으로 사용함으로써 상스럽게 상징주의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상징주의자들의 상징은 산술의 숫자처럼, 1, 2, 그리고 7처럼, 고착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미지스트의 이미지는 부호 a, b, 그리고 대수의 x와 같이 변화무쌍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미지스트들은 상징주의자로 호칭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상징주의는 일반적으로 감상적인 기법과 한패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이미지즘이 인상주의자들의 표현방법으로부터 많은 것을 차용하거나, 차용할 수 있을지라도, 인상주의는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정적 정의에 불과하다. 만약 내가 내면으로부터심리학적 또는 철학적 정의를 내린다고 한다면, 나는 자전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명제 본질의 명료한 진술은 자신의 경험에 기초해야 한다.

자기자체를 탐색하기 위하여,” “정직한 경험자체를 탐색하기 위하여, 인간은 암중 모색을 하고, 어떤 진실 같은 것을 발견한다. 인간은 나는 존재한다,” 이것, 저것, 또는 다른 것으로 존재한다고 내면으로 언급한다. 그리고 간신히 내면에서 발화된 그 말은 밖으로 발설되는 것을 중지한다. 나는 시집 페르소나(Personae)에서, 말하자면 각각의 시 속에서 자아의 완벽한 가면을, 벗어던지면서 실체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면일 뿐인, 변질의 긴 시리즈를 계속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나는 객관적 실체이며, 엡스타인의 태양의 신과 같이, 또는 브르제스카의 토끼를 안고 있는 소년과 같이, 일종의 복합의미를 소유하고 있는, “귀환(The Return)”과 같은 시를 썼다. 세 번째로, 나는 함축하거나,’ ‘연좌시킨,’ 의식의 상태를 묘사한 헤더(Heather)”를 썼다. 한 러시아 특파원은 그것을 상징주위의 시라고 말한 후, 상징주의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천천히 말했다. “알았습니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어떤 새롭고 특별한 사물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물을 보고 그것에 대해 새로운 차원에서 깨닫게 되기를 원하시는군요,” 후자의 이 두 종류의 시는 몰개성적이고, 그 객관적 사실은 우리가 절대 메타포에 대해 언급했던 것으로 다시 돌아가게 한다. 그것들은 이미지즘이며, 그것들이 이미지즘인 한, 그것들은 새로운 회화와 새로운 조각이 된다.

위슬러는 어딘가에서 품위 있는 예술에 대해 언급했다. “회화는 싱싱한 채소(Trotty Veg)가 아니라 색채의 배합이기 때문에 흥미롭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당신은 정글에 들어가게 되고, 자연과 진실과 풍요와 큐비즘과 칸딘스키, 그리고 많은 우리와 만난다. 위슬러와 칸딘스키와 일부 큐비스트는 그들 예술과 관계없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들은 문학적 가치를 구축(驅逐)하고 있었다. 플로베르 추종자들은 주장(constatation)”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1890년대(The ‘nineties)”는 수사(rhetoric) 반대 운동이 전개되었었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물론 보조를 맞추지 않았을지라도 함께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화가들은 문제가 형태(또는 도형, form)와 색채라는 것을 깨닫는다. 오래전에 음악가들은 표제음악(標題音樂; programme music)이 궁극의 음악(ultimate music)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거의 누구든지 설교 끝에 붙이는 송영(頌詠) 같은, 의도된 의미가 있는, 상징을 사용함은 일반적으로 최악의 예술을 생산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 모두 예술은 새로운 의미의 왕관과 십자가와 무지개라는 것을, 그리고 흉측하게 얼버무려진 색채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미지는 시인의 색소(pigment)이다. 화가는 색소를 보고 느끼기 때문에 그의 물감을 사용해야 한다. 나는 그가 묘사적이든지 묘사적이지 않든지 관여하지 않는다. 물론 그는 작품 속에서 모방적이거나 묘사적인 부분이 아니라 반드시 창조적인 것에 의지해야만 한다. 시를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시인은 그가 어떤 신조나 어떤 윤리적 경제적 체계를 지원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보고 느꼈기 때문에 그의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미지는 우리가 직접 알고 있기 때문에 실재적이다. 만약 오랜 전통적 의미를 품고 있다면, 이것은 불멸의 지식 속에 멈춰선, 또는 우리가 그의 전통적 파라디조(paradiso)의 어느 특별한, 즉 사과나무가 있는 산책길을 걸었던, 상징기호를 연구하는 전문 연구자의 증거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용무가 아니다. 이미지를 감지하거나 마음속에 그리는 것이 우리의 용무이다.

브라우닝의 소르델로는 지금까지 제공된 최고의 이미지(the finest masks) 가운데 하나이다. 단테의 파라디조는 가장 경이로운 이미지이다. 그렇다고 나는 그것이 끈질긴 이미지적 퍼포먼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항구적인 부분은 이미지이며, 나머지 성인들의 일정에 대한 담화와 달의 본성에 대한 토론은 문헌학이다. 구체 위의 구체 형태, 다양한 빛의 범위, 이마에 있는 진주의 섬세한 장식, 이 모든 것들이 이미지의 부분들이다. 그 이미지는 시인의 색소이다. 그것을 마음속에 품고 당신은 앞으로 나아가 칸딘스키를 적용할 수 있고, 형태와 색채의 언어로 그의 화제를 바꾸어놓을 수 있으며, 그것을 운문에 적용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이 칸딘스키의 예술의 영성에 대해(Ueber das Geistige in der Kunst)”를 읽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계속 밀고 나갈 것이다.

3년 전 파리에서, 나는 콩코드 역 지하철에서 빠져나오다가 문득 한 아름다운 얼굴, 또 다른 얼굴, 한 어린이의 얼굴, 그러고 나서 다른 미녀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나에게 의미했던 말을 온종일 찾으려고 애를 썼으나, 나에게 알맞은 또는 갑작스러운 감정같이 사랑스러운 어느 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레이누아르 거리를 따라 집에 가면서 여전히 고심하다가 문득 그 표현법을 찾았다. 말을 찾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파롤(speech)이 아니라, 작은 색채의 얼룩 속에서, 하나의 반응식이 나타났다. 당신이 그 안에서 후소(後素)적으로 반복(repeat)되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 원형(pattern)”에 의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원형(原型)” 또는 거의 원형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 아니었으며, 나를 위한 색채 속 낯선 자연언어(language)의 발단이었다. 나는 음악의 음색(tones) 같은 색채의 존재에 대하여 유치원의 이야기로 낯설게 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그런 종류의 사태는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특별한 색채와 영구히 교감하는 음표를 만들려고 한다면, 그것은 협의의 의미를 상징으로 만들려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날 저녁, 레이누아르 거리에서, 내가 화가였든지 아니었든지, 또는 그런 정서를 간직하고 있었든지 아니었든지, 또는 정말로 채료(彩料)와 붓을 구하고 그것을 유지할 에너지가 있었든지 없었든지, 하여간 나는 아주 생생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오로지 색채의 배합으로만 언급하는 비표현적(non-representative)” 회화의 신회화학파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자연언어의 형식과 색채 위에서 칸딘스키의 장()을 읽었을 때, 나는 새로운 것을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그 책을 읽고 겉으로만 이해했던 것, 그가 매우 명료하게 썼던 것을 다른 누군가가 읽고 이해했던 것을 그냥 느낄 뿐이었다. 그것은 어느 예술가가 측면(planes)의 배합 또는 형상의 원형 안에서처럼, 고운 숙녀의 초상화 안에서, 또는 상징주의자들이 우리에게 명령한 것으로서의 그 성모 초상화 안에서처럼, 반드시 많은 환희를 간직해야만 한다는 것이 나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사람들이 새로운 예술을 조롱하는 것을 내가 발견하거나, 우리가 그들끼리 이야기하며 사용하는 서툴고 기묘한 용어의 말놀이를 발견했을 때, 그들이 피카소의 입체 회화의 특징(ice-block quality)”에 대한 우리의 언급을 조롱할 때, 나는 그들이 사색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은 오로지 논쟁과 우롱과 여론에 친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그들이 즐기려고 꺼낸 그것을 즐기는 것일 뿐이거나, 어떤 평론가가 감미로운 음악의 프레이즈에 대해 언급했던 것 같은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구르몽이 언급했던 것처럼 이미 다른 사람들이 생각했던 사고의 껍데기만 언급할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화가는 마치 색채의 현존 명칭보다 더 많은 색소와 미묘한 차이의 보이지 않는 음영을 간직해야만 하는 것처럼, 소리 없이 애절하게 마음을 끌어당기는 그 가치로 존재하는 어느 마음은 현존 자연언어의 카테고리를 초월하는 결핍을 간직하고 있어야만 한다.

이것은 아마 나의 와동(渦動; Vortex)”의 말을 설명하는데 충분할 것이라 믿어도 좋을 것이다.

모든 콘셉트, 모든 정서는 그 자체를 어떤 최초의 형식 안에서 생생한 자각으로 나타낸다. 다시 말해서, 파리에서의 나의 경험은 색소로 표현해야만 했다. 만약 색채 대신 내가 관계 안에서 소리나 측면(planes)을 지각했다면, 나는 음악이나 조각 안에서 그것을 표현해야만 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색채가 최초의 색소(primary pigment)”였다. 나는 그것이 지각되었던 최초의 적당한 반응식이었음을 의미한다. 와동주의자들은 최초의 색소를 사용한다. 와동주의는 그것이 무기력으로, 정교화와 제2의 선형사상(線形寫像; applications)으로, 스스로 전개되기 전의 예술로 존재한다.

내가 어느 와동주의자의 예술에 대해 언급한 것은 다른 와동주의자의 예술로 이항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아마 더 명료하게 언급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나만의 와동주의로 밀고 나아가기로 하자. 모든 시적 자연언어(language)는 탐험의 랑그(languge)이다. 나쁜 글쓰기가 시작된 이래, 작가들은 이미지를 장식품으로 사용했다. 이미지즘의 포인트는 이미지를 장식품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는 그 자체가 파롤(speech)이다. 이미지는 형식화된 자연언어를 초월한 말이다.

전에 나는 한 어린이가 전기 스위치가 있는 곳으로 가서 말하는 것을 보았다. “엄마, 불을 열까요?” 그 어린이는 오래도록 관습화된 탐험의 언어를, 예술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메타포였으나, 그 어린이는 그것을 장식품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장식품에 넌더리가 나고, 그것은 모두 속임수이고, 예리한 사람은 그것을 체득한다.

일본인은 탐험의 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런 지식의 미를 이해하고 있었다. 오래전에 한 중국인은 만약 사람이 말해야 할 것을 12행으로 말할 수 없다면, 침묵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일본인은 그보다 더 짧은 형식 홋쿠(發句)를 발전시켰다.

 

“The fallen blossom flies back to its branch:

A butterfly.”

落花枝に歸ると見れば胡蝶かな。

지는 벚꽃 가지로 돌아간다 보았더니 나비로구나.

―荒木田守武(あらきだもりたけ, 1473~1549) 

 

이것은 아주 잘 알려진 홋쿠의 실체이다. 빅터 플라아는 일찍이 일본 해군 장교와 눈 위를 걷고 있었는데, 그들은 보도를 건너고 있는 고양이와 마주쳤고, 장교가 말했다. “잠깐, 난 시를 짓고 있어요.” 그 시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The footsteps of the cat upon the snow:

(are like) plum-blossoms.”

눈 위의 고양이 발자국, 매화꽃송이(같구나)

 

어구 같구나(are like)”는 원문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을 명확하게 첨가했다.

 

한 개의 이미지로 만들어진 시는 후소(素)적 중첩 형식으로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심상이 다른 심상 위에 포개진 형식이다. 나는 지하철의 감정에 휩싸인 곤경에서 벗어나는 데 유용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30행의 시를 썼고, 다시 그것을 부숴버렸는데, 그 이유는 긴장도가 떨어지는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6개월 후에 나는 그 길이를 반으로 줄인 시로 만들었다. 1년 후엔 다음의 홋쿠 같은 시로 만들었다.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a wet, black bough.”

군중 속에 문득 나타난 이 얼굴들

검고 축축한 나뭇가지의 꽃잎들

 

나는 사람의 사고가 어떤 틈으로 누수되지 않는 한(랑그를 초월하지 않는 한) 의미가 없다고 감히 언급한다. 이런 종류의 시는 외부의 그리고 객관적인 사물이 자신을 변형시킬 때, 또는 내부의 그리고 주관적인 사물로 돌진할 때, 그 찰나를 기록하려고 한다.

이러한 종류의 특별한 자각은 인상주의 예술과 일치되지 않았다. 그것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상주의 예술의 귀결은 무성영화(cinematograph)이다. 인상주의자들의 마음 상태는 무성 영화예술이 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달리 말하면, 무성 영화촬영기술은 인상주의 예술 영역의 필요성을 제거해버린다.

 

남자(Gaudier-Brzeska)

남자의 사고방식에는 2가지 상반된 시각이 있다. 첫째로, 당신은 남자를 지각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풍향계로, 상황의 장난감으로, 인상을 받아들이는 소성(塑性) 물질로 생각할 수 있다. 다음으로, 당신은 남자를 그저 반영과 관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착상하는 존재로, 상황에 맞서 어떤 유동적 힘을 지시하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사람은 어떤 한 가지 방법이 다른 방법보다 낫다고 주장하지 않고, 기질의 다양성에 주목한다. 그 두 진영은 항상 존재한다. 1880년대에, 인상주의를 반대하는 상징주의자들이 있었고, 이제 당신은 와동주의 쪽에 서 있고, 대략 말하자면, 표현주의, 네오큐비즘, 그리고 한 진영에 모인 이미지즘과 다른 진영에 모인 미래주의가 있다. 미래주의는 인상주의의 후예이다. 예술운동인 한 그것은 일종의 가속화된 인상주의이다. 그것은 수레바퀴의 폭주(輻輳)처럼 집중적인 와동주의와 상반됨으로써 확산 또는 표면예술로 존재한다.

와동주의는 과거의 영광을 파괴하는 이렇게 기묘한 틱장애가 없다. 나는 이탈리아(파시즘)가 마리네티를 필요로 했다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그는 품은 달걀(미래주의) 위에 나를 올려놓지 않았다. 그리고 난 전적으로 그의 심미적 원칙과 상반되기 때문에, 나와 내 의견에 동의하는 여러 방면의 사람들이 우리 자신을 미래주의자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거와 비교되는 것을 회피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전통(the tradition)”에 대한 생각이 4, 5세기와 유럽 대륙의 관습적인 취향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 지적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을 선호한다. 와동주의는 집중적인(폭주적인) 예술이다. 나는 그것이 관계적 집중 또는 별종 표현의 관계적 의미와 연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가장 강렬한 집중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표현의 어떤 형식은 다른 것보다 더 집중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역동적이다. 나는 그들이 어조가 더 강한, 또는 더 큰 소리로 외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의미하는 것을 수학으로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

대개 영리한 대학생에게 알려진 수학적 표현의 4가지 다른 강도가 있다. , 산수, 대수학, 기하학, 그리고 해석 기하학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3×3+4×4=5×5,

 

또는 다르게, 3²+4²=5²로 쓸 수 있다.

 

그것은 그저 대화 또는 보통의 공통의미로 존재한다. 그것은 한 사실의 단순한 진술이며, 어느 다른 의미를 함축하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로, 그것은 진리이다.

 

3²+4²=5², 6²+8²=10², 9²+12²=15², 39²+52²=65².

 

이것들은 모두 개별적인 사실이며, 사람들은 그것들의 밑에 있는 유사성을 언급하고 싶을지 모른다. 각각에 대해 차례대로 언급하는 것은 따분한 일이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간단히 대수적 관계로 표현한다.

 

a²+b²=c²

 

이것은 철학적 언어이다. 이것은 회화가 아니다. 이러한 종류의 진술은 사실의 영역에 적합하지만, 아주 흡족한 상태는 아니다.

세 번째로, 클리드를 연구할 때 a²+b²=c²의 관계가 직각삼각형의 두 변에 있는 정사각형과 빗변에 있는 정사각형 사이의 비율에 적용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누군가는 여전히 그것을 a²+b²=c²라고 쓰고 있지만, 누군가는 기하 형태(또는 도형, form)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특성이나 삶의 질이 자신의 문제에 스며들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숫자만 다루었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까지도 기하 형태를 창작하지 못한다. 이 그림은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정사각형이 다른 두 변의 정사각형의 합과 같다는 명제에서 제공된다. 측면(plane) 또는 설명 기하학의 진술은 예술에 대한 이야기와 같다. 그들은 기하 형태에 대한 비판이다. 기하 형태는 창작되지 않는다.

넷째로, 우리는 데카르트 또는해석 기하학에 이르게 되었다. 공간은 두 개 또는 세 개의 축으로 분리된다. (사람들이 form plane을 하나 이상의 데카르트의 기하학적 평면에서 다루든지 옐름슬레우의 언어학적 측면에서 다루든지 그 여부에 따라 다름). 사람들은 일련의 좌표로 이러한 축을 나타내며, 옐름슬레우의 언어(the idiom)가 제공되면, 그 기하 형태는 실제로 창작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방정식 (x-a)²+(y-b)²=r²이 원을 지배한다는 것을 체득한다. 그것은 원이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 원이 아니라, 어떤 원과 모든 원이다. 원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무제약의 원이다. 수학은 해석에 이르기 전에는 침체되어 실로 형편없는 것이다. 그러나 해석에서 우리는 기하 형태를 다루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다. 이런 방식으로 예술은 삶을 다룬다. 예술과 해석 기하학의 차이는 주제의 차이에 불과하다. 예술은 삶과 인간의 의식이 기하 형태와 숫자보다 더 복잡하고 흥미롭기 때문에, 비례 적으로 더 흥미롭다.

이러한 진술은 자발성직관, 또는 예술에서의 그들의 기능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는다. 나는 순수 직관의 수학에서, 마지막 시험을 통과했다. 나는 이미지를 그 어느 때보다 더 선명하게 보았거나, 하늘의 생명력(caelestem intus vigorem)을 느꼈던 것처럼 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았다.

해석학의 진술은 사실이라기보다 그 위의 "영주(領主)"이다. 그것들은 기하 형태와 후소(後素)적 반복을 통치하는 권좌와 권세이며, 그리고 마찬가지로, 사실 위의, 장거리 경주 분위기 위의, 내일 위의, 예술 영주의 위대한 작품이다. 예술의 위대한 작품은 이러한 4종류의 방정식을 담고 있다. 그것들은 형태(평면과 측면)가 생겨나게 한다. ‘이미지란 그런 방정식을 의미한다. 수학 방정식이 아니라 a, b, c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형태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다, 절벽, 밤에 대해서는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이미지는 관념이 아니다. 그것은 매듭 또는 한 덩어리이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 필연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 그리고 관념이 끊임없이 돌진하는 곳으로, 들어가고 통과함으로써 와동(渦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점잖게 사람들은 그것을 와동이라고 호칭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필요성은 와동주의(渦動主義; vorticism)”라고 하는 명칭을 만들었다. 명칭은 사물의 궁극(nomina sunt consequentia rerum)이며,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 진술은 와동주의 운동의 경우보다 더 진리인 적이 결코 없었다.

시와 마찬가지로 회화와 조각도 진리이다. 워즈워스와 윈덤 루이스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과 색채를 사용하고 있다. 브르제스카와 엡스타인은 관계의 측면을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기하학에서 다루는 평면관계와 다른 측면관계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조각에서 유기적 형태의 필요성이라고 불리는 바로 그것이다.

나는 내가 집중적(폭주적) 예술이라고 한 것을 명료하게 만들었다. 이 와동주의 운동은 신비화의 운동이 아니다. 비록 호의적인사람들이 꽤 당황했었을지라도. 형태의 구성은 건초 더미에서 반짝 떠오른 이미지(light)를 복사하거나 모방하는 것보다 훨씬 더 활기차고 창의적인 행동이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형태와 색채의 자연언어가 존재한다. 그것은 책에서 어떤 기호와 색채에 부여된 어떤 의미에 따라 생긴 상징적이거나 우의적인 자연언어가 아니다.

서로 다른 메디아에서 일하고 있는 어떤 예술가들은 서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일하는 가운데 서로의 장단점을 알고 있었는데, 공동의 담화가 없이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당대(contemporary) 예 가의 우수성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 자신의 신념을 옹호하는 것뿐이다. 나는 윈덤 루이스가 디자인의 대가라고 믿는다. 그는 우리 예술에 새로운 디자인의 단위와 새로운 구성방식을 도입했다. 나는 연속물 티몬(Timon)”이 위대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가 10년 동안 가장 잘 표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티몬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면, 나는 고전극이 무엇인지 질문함으로써 대답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디자인은 티몬과 같은 모티프(motif)로 만들어진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그 모티프는 주변의 우행(愚行)에 당황하고 차단된 지성의 분노이다. 그것은 정서적 모티프이다. 윈덤 루이스의 회화는 언제나 거의 정서적이다.

 

마덤로오드(워즈워스)

워즈워스의 작품은 나에게 즐거움, 어떤 때는 중국인과 일본인의 판화와 회화를 받은 즐거움 같은 것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나는 그의 카키(Khaki)”로부터 그러한 즐거움, 어떤 때는 그의 작품이 나에게 모차르트 시대와 마찬가지로 음악에서 내가 가진 즐거움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만약 국외자가 이 새로운 작품에 대해 신속하게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그가 음악에 접근하는 정신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나쁜 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윈덤 루이스는 바흐이다.” 아니, “Lewis is Bach”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느낌은 피카소의 특정 작품과 윈덤 루이스의 특정 작품이 그 안에 음악에 대한 바흐의 어떤 특성을 회화로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다. 로맨스와 정취와 묘사로 들어가기 전에. 음악은 바흐-모차르트 시대의 와동주의자였다. 새로운 와동주의자의 음악은, 무적(霧笛; 일명 잡음조율사) 속에서 죽은 고양이의 모방적 묘사로부터가 아니라, 하모니의 수학적 새로운 계산으로부터 도래할 것이다.

엡스타인은 너무 잘 알려있어 이 논문에서 소개할 필요가 없다. 브르제스카의 조각은 모든 진영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므로 그것에 대해 간략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 브르제스카는 조각에 대한 감상을 측면관계에서의 평가의 덩어리(the appreciation of masses in relation)”, 그리고 조각을 만드는 재능을 측면의 이러한 덩어리를 규정하는 것으로규정했다. 사람들은 대리석 고리를 자유자재로 연결하거나, 청동을 뽑아내서 장군의 모자 위의 깃털 모양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 인내와 책략의 그 결합보다 측면관계의 덩어리를 제공할 수 있는 지성의 형태로 더 교묘히 움직인다. 에첼스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그는 여행 중인데, 몇 가지 우수한 데생을 보내줬다. 와동주의자들의 작품과 와동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잡음 이전에 존재한 내적 필요성의 감정이 더 명료하게 만들어질 수 없다. 우리는 따로 일했고, 근본적인 합의를 찾았고, 함께 작업하기로 결정했다.

 

에즈러 파운드

 

주석

나는 이미지스트나 와동주의자의 장시(長詩)도 가능한지 자주 질문을 받는다. 홋쿠를 발전시킨 일본인들은 노(, のう) 연극도 발전시켰다. 최고의 노(, のう) 연극에서, (, のう) 연극 전체는 하나의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하나의 이미지로 모인 것을 의미한다. 폭주(輻輳)와 같은 그 단일성은 율동과 음악으로 보강된다. 나는 와동주의자의 장시(長詩)에 반대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다른 한편, 어떤 예술가도 자신이 만드는 모든 시나 회화에 와동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것은 그것의 한계를 초월한 것이다. 어떤 것들은 박절기 같이 계량된 표현, 또는 산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리듬보다 더 동요된 리듬으로의 표현을 강요받는 것 같다. 그리고 비록 그들이 와동을 포함하고 있지 않더라도, 이러한 주체는 어떤 흥미, “삶의 비판또는 예술의 비판 같은 어떤 흥미를 담고 있는지 모른다. 이러한 것들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리고 와동주의자 또는 이미지즘의 작가는 그가 단순히 교훈적 산문 논설을 인쇄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처럼, 와동주의 또는 이미지즘이 아닌 일정량의 작품을 제공함으로써 정당화될지 모른다. 미완성된 스케치와 데생(drawings)은 유사 흥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것들은 와동주의를 향한 시련이자 시도이다.

*

Citation: This article was first published in the Fortnightly Review 96 [n.s.], 1 September 1914, pp. 461471.

 

각주

와동주의(渦動主義, Vorticism)-Ezra Pound/주근옥 역

 

조선문학 2021. 1월호(통권 357호). pp. 8~42. (기획특집)

한맥문학 2021. 1월호 통권 364호(2020. 12. 25) 上

한맥문학 2021. 2월호 통권 365호(2021. 01. 25) 下

 

 참고자료

  SUR LES ROUES/Gueune-Ok JOUH

 구조의미론(Structural Semantics); A.J.Greimas/주근옥 역

 의미론선집(On Meaning); A.J.Greimas/주근옥 역

 정념의 기호학(The Semiotics of Passions); A.J.Greimas, Jacques Fontanille/주근옥 역

 미니멀리즘; C.W. 할렛, 워런 모트/주근옥 역

 서사문(마사오카 시키)/주근옥 역

 주근옥의 미니멀리즘 시선집

 

 한국시 변동과정의 모더니티에 관한 연구_주근옥

 한국 현대시사에 대한 철학적 고찰의 빛나는 성과_장수익(한남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