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조구치 겐지(みぞぐち けんじ, 溝口健二, 1898.5.16~1956.8.24)

 

1896년에 태어나 고베에서 그림을 배우고 고베소식신문사[神戶送信新聞社]에서 광고 디자인을 했다. 1919년 도쿄로 돌아온 그는 닛카쓰 영화사[日活映畵社]의 배우가 되었다가 영화를 연출했다.

그의 영화 《거리의 스케치》(1925), 《종이 인형이 속삭이는 봄》(1926), 《도쿄행진곡 (東京行進曲)》(1929), 《도회교향악 (都會交響樂)》(1929) 등은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다. 그는 1930년대 중반부터 독창적인 영화들을 찍기 시작했다. 《기원의 자매(祈園の姉妹)》(1936), 《나니와 엘레지(浪花悲歌)》(1936) 등은 현대 일본 사회에서 거부되는 전통적 가치에 대해서 다루었다.

1939년 《마지막 국화이야기(殘菊物語)》를 시작으로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연작 시대극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를 되도록 피하려고 했으며, 전후 일본 근대 사회의 문제를 다룬 영화를 주로 찍었다. 그는 남성의 사회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성이나 남성 때문에 고생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을 주로 다루었다. 그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의 탐미주의적 작품 경향 때문이다. 카메라와 등장 인물 사이에 먼 거리를 두고 찍는 롱 테이크 촬영기법은 일본적인 탐미적 경향을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미조구치의 촬영기법은 1940년대 오손 웰스, 루키노 비스콘티, 막스 오퓔스 등보다 이전에 독자적인 경지를 확보하였다.

《오하루의 일생》(1952)은 일본판 《여자의 일생》으로 기생 오하루의 일생을 관조적으로 그려냈다. 이 영화는 1950년대 말 누벨바그 감독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미조구치의 대표적 시대극 《우게쓰이야기(雨月物語)》(1953)는 특유의 탐미적 리얼리즘을 통해 3년 연속 베니스영화제의 은사자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누벨바그 앙드레 바쟁은 미조구치의 ‘원 신 원 쇼트’의 카메라기법을 진정한 리얼리즘의 모범이라고 극찬하였다.

후기작으로 갈수록 비극적인 취향이 두드러지는데 1956년 죽기 직전에 찍은 《산쇼 다이유(赤線地帶)》의 마지막 장면은 유명하다. 여주인공은 남동생을 살리기 위해 호수에 빠져 자살하는데 자살장면은 보이지 않고 호수에 퍼지는 동심원만으로 자살을 암시했다. 그는 호수 주변의 황폐하고 몽환적인 풍경을 통해 슬픔과 아름다움, 숭고함의 감정을 탐미적으로 추구했다.

 

1923年 愛に甦へる日

1929年 東京行進曲 原作菊池寛

1929年 朝日は輝く 共同監督伊奈精一

1933年 瀧の白糸 原作泉鏡花

1935年 折鶴お千 原作泉鏡花

1935年 虞美人草 原作夏目漱石

1936年 浪華悲歌

1936年 祇園の姉妹

1937年 愛怨峡

1938年 露營の歌

1939年 残菊物語 原作村松梢風

1941年 藝道一代男

1941年 - 1942年 元禄忠臣蔵 前篇・後篇 原作真山青果

1946年 女性の勝利

1946年 歌麿をめぐる五人の女 原作邦枝完二

1947年 女優須磨子の恋 原作長坂秀雄

1948年 夜の女たち 原作久板栄二郎

1950年 雪夫人絵図 原作舟橋聖一

1951年 お遊さま 原作谷崎潤一郎

1951年 武蔵野夫人 原作大岡昇平

1952年 西鶴一代女 原作井原西鶴 ※ヴェネツィア国際映画祭国際賞、BBC「21世紀に残したい映画100本」に選出

1953年 雨月物語 原作上田秋成 ※ヴェネツィア国際映画祭銀獅子賞、米アカデミー賞衣装デザイン賞ノミネート、ナショナル・ボード・オブ・レビュー経歴賞

1953年 祇園囃子 原作川口松太郎

1954年 噂の女

1954年 近松物語 原作近松門左衛門 ※第8回カンヌ国際映画祭コンペティション

1954年 山椒大夫 原作森鴎外 ※ヴェネツィア国際映画祭銀獅子賞

1955年 新・平家物語 原作吉川英治 ※ヴェネツィア国際映画祭コンペティション

1955年 楊貴妃 ※ヴェネツィア国際映画祭コンペティション

1956年 赤線地帯 ※ヴェネツィア国際映画祭コンペティショ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