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길(La Strada)>에서 발견한 모더니티

대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0020007 김광화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를 본 뒤에 “<길(La Strada)>를 보고 감상문을 쓰라”고 하신 이유가 도대체 뭘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미 교수님의 사이트 게시판에 목원대 사회과학대 무역학과 김진안씨의 감상문이 올라와 있는 상황에서 재차 스토리 위주의 감상문을 요구하실 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영화 <길(La Strada)>이 관객과 소통하는 방법이 어떠한가를 살펴보는 것에 초점을 두고 감상하기로 했다.

로드무비의 형식인 이 영화는 여자 주인공 젤소미나가 남자 주인공 참파노를 따라 유랑을 시작하면서 전개된다. 제목에 나타나 있는 대로 모든 사건은 두 주인공과 함께 “길”에서 일어나고 소멸된다. 하지만 이 “길”에는 특수한 효과가 숨겨져 있지도 않고, 수사학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억지 부여하지도 않았으며, 포장만 되어 있지 않을 뿐 우리가 두 발로 거닐고 두 눈으로 보는 평범한 “길”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영화를 진지하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화가 끝나고 “Fine”가 뜬 뒤, 젤소미나와 참파노가 다녔던 “길”이 단지 “우리가 두 발로 거닐고 두 눈으로 보는 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짐작하고, 보다 자신과 가까운 의미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목원대 사회과학대 무역학과 김진안씨가 그의 감상문에서 “삶의 정처 없이 떠도는 장돌뱅이 차력사, 잠파노의 삶을 통해서 인생의 여정, 인생의 길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라고 말 한 것이 그 좋은 예라 하겠다. 내 감상을 덧붙이자면, 나는 이 영화를 본 뒤 ‘“길”은 의사소통의 과정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던 두 사람 젤소미나와 참파노가 함께 유랑하면서 정이 들게 되었으며, 또한 그들이 만나게 되는 마을들과 그곳 사람들, 그리고 수녀와 수녀원은 두 사람이 길을 따라 이동한 결과 발생하게 된 관계이기 때문이다.

영화 <길(La Strada)> 안에는 극단적으로 아주 나쁘기만 하거나 아주 착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적군과 아군을 명백하게 가르는 서술자의 친절한 개입이 없는 것이다. 관객은 모질게만 보이던 참파노를 욕하면서도 나중에는 동정하기도 하고, 뭘 믿고 까부는지 모르는 마토를 보며 재수 없다고 생각하다가 젤소미나와 단 둘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그의 사려 깊고 성숙한 이면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설정은 작가가 작품을 주도하고 이끌면서 관객을 작품에 몰입시키지 않고,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이 작품에 대해 “감정의 거리두기”를 하게 되고 관객이 영화를 자기 주관적으로 바라보고 비판할 수 있게 만든다.

이 영화에는 “감정의 거리두기”와 더불어 서술 몽타주 기법¹⁾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자면,

참파노가 젤소미나를 뒤에 태우고 어딘가로 향해 가는 장면 다음에 반복해서 들려오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와 함께, 오른쪽이나 왼쪽, 혹은 앞이나 뒤로 스쳐지나는 길가 풍경을 편집해담아 놓은 영상(shot)이 이어지면 이것을 보고 듣는 관객은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으며 시간이 흐르고 있다.’고 인식하게 되며, 카메라가 풍경을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담아내느냐에 따라서 젤소미나가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참파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관객은 스스로 상상해서 조합하기 때문에 이 부분의 영상을 보고 관객은 전혀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위의 그림에서 각각 독립된 화면(shot)이며 화살표의 방향은 화면상에서 풍경이 흘러가는(스쳐지나가는) 방향이다. 일차적으로 관객은 각 화면을 일인칭 시점에서 바라본 풍경이라고 인식하게 되며, 왼쪽 화면의 경우 정방향으로 탑승했을 경우 보게 되는 풍경으로서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가는 참파노의 시점이라 인식하게 되고 오른쪽 화면의 경우 역방향으로 탑승했을 경우 보게 되는 풍경으로서 짐칸에 타 뒤쪽을 바라보는 젤소미나의 시점이라 인식하게 되는 것이 그 예이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 사용된 몽타주 기법은 <전함 포템킨>의 그것보다 더 세련되고 정제되어 보인다. 서로 다르고 관계없어 보이는 이미지들의 반복된 편집, 즉, 출동 몽타주 기법의 효과만으로는 성숙하지 못한 관객에게 부담감과 거부감을 줄 수도 있으나 서술 몽타주 기법은 마치 관객이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기 때문에 이러한 몽타주 기법을 적재적소에 사용함으로써 관객이 몽타주에 대한 안목이 전혀 없다 하더라도 심리적 갈등이나, 사건이 해결되어 장면이 넘어가거나, 장소를 이동할 때의 서사적 흐름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언급했다시피 영화 <길(La Strada)>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서술자의 “설명”이 없고 “보여주기”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젤소미나와 참파노의 관계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힘”과 연관 지어 영화의 메시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젤소미나와 참파노의 관계는 굳이 그래마스의 기호4각형에 대입시켜보지 않더라도 심층 의미가 숨겨(담겨)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쉽게 말해서 강의시간에 배웠던 시에 있어서의 모더니티와 같은 것이 이 작품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젤소미나를 착취 당하는 노동자(the proletariat)로 참파노를 자본가(the bourgeoisie)로 볼 수도 있고, 젤소미나를 머리가 나쁘고 가난하지만 착하고 성실한 학생으로 참파노를 성적을 우선시하고 촌지를 요구하는 폭력적이고 고지식한 선생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 <길(La Strada)>이 흑백 영화이며 만들어진지 50여년이나 지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21세기를 사는 내 눈에 전혀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훌륭하게 느껴진 이유는 바로 내용(message)을 다루는 방식과 촬영(서술) 기법이 현대적(modernity)이었기 때문이지 않나 생각한다.

각주

1) 몽타주(montage)란 「쌓아 올린다」라는 뜻의 프랑스어로서 편집을 통한 필름의 조합을 가리킨다. 편집의 특정한 방법들을 지칭하기 위하여 몽타주에는 수많은 하위 범주들이 생겨났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①가속 몽타주:액션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효과를 더하기 위해 편집을 사용하는 것. 액션이나 추적 장면에서 각 쇼트 shot들의 길이를 점차 줄임으로서 영화의 리듬에 외적인 페이스를 부과할 수 있다. 편집에 의한 페이스의 가속화를 말한다.

②아메리칸/헐리우드 몽타주:일련의 짧고 빠른 쇼트들로 비교적 짤막한 시간 내에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난 　　　　　　　　사건의 핵심을 간추려 제시하도록 편집된 scene.

③개념 몽타주:다수의 쇼트들을 배열해야 비로소 나타날 수 있는 의미를 창조하기 위해 쇼트들을 이어 붙이는 것. 개념 몽타주의 이론과 실천은 에이젠쉬타인과 푸도프킨을 위시한 1920년대 러시아 감독들의 주요 과제였다. 그들은 몽타주(편집)가 영화 예술의 핵심이라고 믿었고, 그것으로부터 최대한의 표현력을 이끌어 내고자 했다.

④견인 몽타주:스크린 위의 분리된 두 이미지들이 시각과 문맥상의 유사성으로 인해 서로에게 연결되는 편집 방식을 말한다. 표현적, 개념적 목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⑤서술 몽타주:쇼트와 씬들을 미리 작성된 촬영 대본이나 마스터 쇼트의 절차에 따라 자연스런 시간적 순서대로 배열하는 편집. 여기서 편집자의 목적은 사건의 외관을 재건하고 스토리의 서사적 흐름을 구성하는 것이다. 개념 몽타주가 쇼트들을 결합, 충돌시켜 관념과 효과를 이끌어 내려 하는 반면 서술 몽타주는 스토리 전개에 중점을 둔다.

⑥운율 몽타주:영화 전체나 한 장면의 주제적 의도를 달성하기 위한 운율적 변화를 도모하는 편집. 가장 두드러지게 편집 리듬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쇼트의 길이, 프레임 내의 움직임, 그리고 장면 사이에 쓰인 장면 전환 transition의 유형들이다. 프레임 속의 움직임들이 내적 리듬을 규정하는 반면, 쇼트들의 실제적 길이는 외적 리듬을 결정한다.

⑦러시아 몽타주:1920년대의 탁월한 러시아 감독들(에이젠쉬타인, 쿨레쇼프, 푸도프킨, 베르토프 등)이 구사한 다양한 편집 기법을 일컫는 용어이다. 대표적인 예로 에이젠쉬타인은 변증법적 효과를 위해 쇼트들을 배열하고 대조시키는 '충돌 몽타주'를 옹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