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소설형식에 대한 추구

-조르주 페렉 사후 10주기를 맞아

 

 Photo of Georges Perec
   Georges Perec

 

이재형 / 외국어대 강사

 

지난 1982년에 세상을 떠났던「사물들(les choses)」의 작가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에 대한 관심이 사후 10주기를 맞아 다시 고조되고 있다.

2월 28일부터 3월 1일까지 사흘 동안 파리의 비디오관에서는 페렉이 만든, 페렉에 관한 페렉이 참여한 모든 영화와 TV방송 프로그램이 상영된다. 또한 3월 25일부터 4월 25일까지 한 달간 몽트뢰유 시에서는 여러 가지 행사가 벌어지는데, 로베르데노 도서관에서는 조르주 페렉이 〈진열실〉이라는 주제에 맞추어 글을 쓴 적이 있는 일곱 점의 그림이 전시될 예정이어서 관심을 끈다. 여기서는 영화와 음악, 연극 행사도 개최된다. 세빌라에서 열리는 만국박람회에서는「삶 용법(La vie mode d’emploi)」의 원고가 프랑스 관에서 처음으로 전시된다고 한다.

조르주 페렉은 1936년생이다. 폴란드에서 이주해 온 그의 부모들은 아버지가 노동자, 어머니는 미용사였다. 그들은 파리 제20구 빌랭 가의 메닐몽탕에서 살았는데, 지원 입대했던 아버지는 1940년에 사망했다. 페렉이 여섯 살 때 어머니는 그를 빌라르-드-랑스에 있는 적십자사에 위탁했다. 그의 어머니는 드랑시 수용소에서 1943년에 숨을 거둔다. 1945년 이후로 페렉은 비엔펠트 숙모 집에서 자라게 된다.

 

처녀작 ‘사물들’ 발표 후 유명해진 페렉의 작품들

29세 때 그는 처녀작인「사물들」을 발표, 르노도 상을 받고 TV에 출연하는 등 유명해진다. 1967년 울리포(OULIPO, -L’Ouvrir de litterature potentielle, 잠재문학 작업실) 그룹에 가담한 그는 외르의 물랭 당데에 정착하고, 여기서「사라짐(La disparition)」을 쓴다. 첫 번째 아내 폴레트와 헤어진 그는 1975년도에 자전적 텍스트인 「W 혹은 유년기의 추억(W ou le souvenir d'enfance)」을 끝내고, 같은 해 여류영화인인 카드린 비네를 만나 결혼한다(카트린을 처음 만나는 이 날은「삶 용법」에서도 가장 중요한 날짜로 기록될 것이다). 〈장편소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두꺼운 책은 1978년에 메디치 상을 수여받는다. 국립과학연구소에서 자료정리 담당자로 16년간 일하면서 페렉은 영화라는 장르에 시나리오 작가, 감독, 번역자로서 일한다. 그는 1982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수천 장의 미완성원고를 남겨놓은 채.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사물들」에는 〈60년대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과연, 독자들은 튀니지에서 파견교사로 일하다가 결국에는 체념 속에서〈체제 속으로 흡수되는〉파리 출신 대학생 제롬과 실비의 음울한 모험담을 읽으면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응시할 수 있었다. 사회학적 소설이며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서인 이 작품은 칼 마르크스를 인용하면서-시대의 요구였기 때문에!-끝을 맺는다. 「사물들」은 그 이후의 소설들을 예고하기도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감정교육」의 모작 같아 보이는 이 작품은 문법적인 재치(각 장은 조건법이라든가 반과거 혹은 미래형으로 일관성 있게 통일되어 있다)라든가 열거 등 독특한 형식을 보여준다. 또한 거의 과학적이라고 해도 될 만큼 생기 없는 이 이야기의 뒤편에서 우리는 스물아홉 살짜리 작가의 부드러운 냉소와 가장된 고백을 읽을 수 있다.

「사라짐」은〈리포그람(lipogramme)의 이야기〉다. 리포그람의 역사는 세계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이미 그리스인과 로마인, 황금시대의 스페인 사람들은 하나 혹은 여러 개의 글자를 생략한 채 글쓰는 것을 즐겼다. 이 같은 방법에 흥미를 느낀 페렉은「랭보와 보들레르의 시에 이 방법을 적용하였다.「사라짐」에서는 무려 312쪽에 걸쳐 모음〈e〉가 생략되어 있어서 페렉은 이 방면의 세계 기록 보유자로 꼽힐만하다. 하지만 더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은 많은 독자들 그리고 문학 비평가들이 이처럼〈e〉가 부재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이 작품을 끝까지 읽었다는 점이다.

그의 또 하나의 작품「Les revenentes」는 「사라짐」과는 반대의 경우를 보여준다. 이「Les revenentes」에서 쓰이는 모음은 오직〈e〉뿐이다. 작가 자신의 말에 따르면, 〈이 두 작품은, 단 하나의 단어도 공유하고 있지 않지만, 많은 점에서 서로 흡사하다〉.

페렉의 이 같은 형식 실험이 완숙에 이른 것은「삶 용법」에서이다. 걸작이라든가 우리 시대의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이라는 찬사를 비평가들로부터 받고 있는 이 작품은 그가 좋아하는 주제들과 모든 고정관념, 수십 년간 축적된 체험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페렉은 〈건물 정면이 제거되고 없는 파리의 한 건물을 묘사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작업은 1969년에 시작되었다. 이해에 그는 파리 17구 시몽-크뤼벨리에가 11번지에 자기 소유의 건물 한 채를 지었다. 그 이후로 10여 년 동안 그는 이 자그마한 건물의 지하실에서부터 지붕 밑 방까지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각 방의 분위기를 세심하게 파악하고, 거기 어울리는 가구라든가 자질구레한 실내장식품, 집기 등을 들여놓았다. 그러고 나서 각 방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의 성격이라든가 생활습관, 특징 등을 관찰했다.

 

수학적인 구조로 되어있는 ‘삶 용법’의 구성

이렇게 해서 쓰인 「삶 용법」의 구성은 그의 모든 작품들이 그러하듯 극히 엄격하게 이루어져 있다. 건물은 마치 바둑판처럼 10×10개의 칸으로 나뉘어 있는데, 칸 하나하나가 바로 방 한 개와 한 장(章)을 이룬다. 한 칸에서 다른 칸으로 옮겨가려면 서양장기에서처럼 나이트를 이용해야 한다. 일반 독자들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이러한 수학적 구조를 통해 42개의 요소들이 일목요연하게 만들어지고, 이 요소들은 99개의 장(章)속에 모두 나타나게 되어 있다.

이렇게 쌓아 올려놓은 구조물을 일단 드러내고 나면 독자는 감동적이거나 우스꽝스런 전기(傳記)와 일화들, 불가사의한 이야기들, 모작들, 진실과 거짓들이 실타래모양 얽혀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모두 천4백67명의 등장인물이 나오는 이 뒤엉킴 속에서 세 노인이 부각된다. 백만장자인 페르시발 바를르부트는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면서 5백 개의 서로 다른 항구에서 5백 개의 서로 다른 바다그림을 그린다. 가스파르 윙클러가 이 그림들을 퍼즐로 바꿔 놓으면, 바를르부트는 이걸 다시 짜 맞추려고 애쓴다. 세르쥬 발렌스로 말하자면 정면이 없는 건물에 색칠을 하려고 한다.

웅대한 스케일이라든가 독특한 작품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 있는「삶 용법」은 흔히 프루스트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조이스의「율리시즈」, 발작의「인간희극」에 비유되고 있다.

페렉이 글쓰기 외에 특히 관심을 갖고 활동한 분야는 영화다. 그는 영화에 대해서 가히 병적 기아증을 연상시킬 만큼의 열정을 보였다. 그가 60년대 초에 같이 일했던 그룹은 위대한 소련 감독 아이젠슈타인에 대한 경의의 뜻으로「총괄선」이라고 불렸다. 그의 영화애호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사물들」에서 두 페이지에 걸쳐 그가 좋아하던 미국 영화들을 열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1974년 조르주 페렉은 베르나르 케이잔느와 함께 처음으로 영화를 연출했다. 자신의 작품인「잠자는 남자」를 영화화 한 것으로서, 작크 스피쎄르가 주연을 맡았다. 페렉은 이 배우를 첫눈에 보고 선택했는데, 페렉과 마찬가지로 이 배우도 입술위에 비스듬하게 가느다란 흉터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소설에도 나오는 무성(無聲)이, 일상적인 제스처의 반복 속에서 소멸되어 가면서 생을 포기하는 한 대학생의 영상과 대화를 나누는 작품이다. 또한 그는「영화로 찍은 인생」이라는 작품의 해설을 쓰고 또 직접 녹음까지 하는데, 이 영화는 1930년대에 만들어진 아마추어 영화의 영상들을 몽타주 한 것이었다(클로드 방튀라·미셀 파마르 공동 연출), 카트린 비네를 만나면서부터 그의 영화 활동의 반경은 더 넓어진다. 1976년 그는 자기 어린 시설 중에서 기억할만한 하루를 그린 자서전적 중편 영화를 연출하는데, 제목은「실종 장소」였다. 또한 그는 장-폴 라프노, 장-프랑스와 아담과 함께 사나리오도 썼다. 알랭 코르노를 위해서는「검정색의 배열」이라는 시나리오를 써 주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것은 1979년도에 로베르 보베르와 함께 만든「엘리스 섬의 이야기」이다.

 

평범한 자명성을 강조한 유태인에 관한 영화

이 영화는 조르주 페렉의 뿌리를 캐 들어가는 작품이다. 사실 페렉은 50년대 말까지만 해도 자신이 유태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이 당시만 해도 그는 마르크스주의자에 세계주의자, 속인으로 자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얘기에 의하면, '60년대 들어서부터 그는 자기 어린 시절을 얘기할 때마다 자기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을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70년대 말에 로베르 보베르와 함께 영화를 찍으면서 그의 그 같은 자각은 완전히 표면화되었다. 로베르 보베르는 자기 부모의 고향 도시에 관한 영화 한 편을 막 찍고 난 참이었다. 맨해턴 앞쪽 바다에 엘리스 섬이 있는데 이곳에 박물관이 세워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 보베르는 추억으로 가득 찬 이 장소를 답사해 보라고 페렉에게 권유했다. 바로 이 창고 같은 섬을 거쳐서 50여 년 동안 수백만 명의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들어갔는데, 그들 중 대부분이 유태인이었다.

페렉은「엘리스 섬의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유태인이라는 게 뭔지, 유태인이기 때문에 내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 나는 정확하게는 알고 있지 않다. 그것은 자명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 자명성은 그 어떤 것과도 관련되지 않는 평범한 자명성이다. 그것은 어떤 소속의 표시도 아니며, 어떤 믿음이라든가 종교라든가 실천이라든가 민속이라든가 언어와 연관되어 있지도 않다.〉

그의 자전적 텍스트인「W 혹은 유년기의 추억」은 그의 삶의 깊은 뿌리를 이루는 어린 시절을 다룬다는 점에서「엘리스 섬의 이야기」의 연장처럼 보이는 작품이다. 등을 벽에 기댄 채 설명 불가능한 것에 직면한 페렉은 「W 혹은 유년기의 추억」의 독자에게 그 의미가 최후의 순간에 드러나게 될 시련을 강요한다. 읽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하고 매혹시키기도 하는 등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이 작품은 겉보기에 아무런 상관도 없는 두 개의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두 텍스트는 장이 바뀔 때마다 한 장은 이탤릭체 활자로, 그 다음 장은 로만체 활자로 번갈아가며 달라진다. 어떤 장에서는〈W〉라는 먼 섬에서 벌어지는 허구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여기서 화자인 가스파르 윙클러(「삶 용법」의 등장인물이었던가)가 실종된 소년을 찾으러(이 소년의 이름도 가스파르 윙클러다) 떠난다. 이것은 여행 이야기인가 아니면 악몽의 이야기인가? 또 다른 장은 조르주 페렉의 자서전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나치 강제수용소로의 송환, 그리고 시간·공간 표지의 유실로 인해 망가지고 풀어 헤쳐지고 해어진 추억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몇 개의 장을 읽고 난 독자는 스스로 두 텍스트를 연관시키게 된다. 이 W라는 섬에 관한 텍스트는 작가가 그의 열두 살 때를 다룬, 그러니까 어린 시절을 다룬 이야기다. W라는 섬은 오직 스포츠의 윤리에 의해서만 지배되며, 이곳의 모든 소년들은 14세가 되면서부터 올림픽의 이상을 충족시키기 위해 의무적으로 등록해야만 한다. 모든 처녀들 역시 감금된 채 끔찍한 상황 속에서 출산을 해야만 한다. W의 규칙들이 선포되고 사회조직이 분명히 드러남에 따라 공포가 확산된다. 이 이야기가 규칙들을 선포하고 W라는 섬의 운동선수들의 육체를 서서히 다루면서 나치가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은 극에 달한다.

 

페렉 사후에 출판된 아홉 권의 작품들

1982년에 그가 사망한 뒤로 페렉의 작품 아홉 권이 출판되었다. 수많은 잡지에 여기 저기 게재되었던 이 텍스트들은 대부분 접하기가 힘든 것들이었다. 조르주 페렉 협회 사무총장인 한스 하르체는 페렉의 집에서 아르스날 도서관으로 이관된 수천 장의 종이들을 면밀히 검토해서 분류하고 있다. 한스 하르체는 이렇게 말한다.〈이 기록들은 연구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보고(寶庫)나 다름없다. 이 기록들 속에 페렉의 초고와 계획들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삶 용법」의 초고는 그 어떤 독자도 발견하지 못했던 형식상의 제약을 벌써부터 드러내 보여주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엄격한 의미의 중요한 미발표 원고는 없다. 지금 현재는 1960년대 초에「파르티잔」지에 실을 예정으로 쓴 여섯 편의 문학평론집(누보로망, 리얼리즘 문학, 참여 등)을 준비하고 있다. 뇌이유 출판사에서 간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맨체스터 대학의 데이빗 벨로스 교수는 얼마 전에 두 권의 미발표 소설을 찾아냈다. 벨로스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1993년 2월 영국과(하빌출판사) 프랑스에서(뇌이유 출판사) 동시 출간될 계획인 페렉의 전기를 끝냈다. 3년에 걸쳐서 나는 프랑스와 튀니지,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독일, 유고슬라비아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150명도 더되는 그의 친구들과 친척들, 지기(知己)들과 인터뷰를 했다. 그러던 중 벨그라드에 사는 화가 말라덴 스르비노빅의 집 벽장에서 페렉이 21세 때 쓴 120쪽짜리 소설「사라예보의 음모」의 원고(카본지로 복사한)가 발견되었는데, 페렉 자신은 이 원고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었다. 또한 나는 우연한 기회에 그가 군복무를 마친 직후에 정성들여 쓴 157쪽짜리 소설「용병」(타자기로 친)을 입수하게 되었다. 이 작품에는 「W 혹은 유년기의 추억」과 「삶 용법」에 등장하는 가스파르 윙클러가 또 다시 나온다.〉청년기 때 쓴 이 두 편의 소설은 1993년에 출판될 예정이다.

페렉은 외국에서도 역시 성공을 거두고 있다.「사물들」은 16개 언어로 번역되었고,「삶 용법」은 7개 언어로 옮겨졌다. 그러나 그가 사용하는 말맞히기놀이의 수법, 글자 수수께끼의 사용, 간파해 내기가 불가능한 그의 온갖 속임수 때문에 가장 숙련된 번역자조차도 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삶 용법」의 제 59장을 보면 페렉은 울리포의 모든 동료들의 이름을 문장 속에 슬그머니 끼워놓았다.〈Coppelia enseigne a Noe nautique〉에서 〈No l'ant nau〉는 동료인 Noel Arnaud의 이름을 끼워넣은 것이다.〈Le géographe lecomte, descendant le fleuve Hamilton, est heberge par les Eskimos et pour les remercier offre une caroubeau chef du village〉에서 〈roube au〉는 Roubaud라는 이름을 끼워 넣었다. 이런 난점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해외로 수출되기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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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페렉(Georges Perec, 1936년~1982)은 프랑스의 소설가이다.
1936년 파리에서 태어나, 노동자 계급 거주지인 벨빌 구역의 빌랭 가에서 유년을 보냈다. 프랑스로 이주한 폴란드계 유대인이었던 부모님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잃은 뒤 페렉은 고모에게 입양되었다. 1954년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지만 학업을 중단하고 『누벨 르뷔 프랑세즈』, 『파르티장』 등 여러 잡지에 기사와 문학 비평을 기고했다. 군 복무 뒤 파리로 돌아와 1962년부터 국립과학연구소의 신경 생리학 자료 정리가로 일하며 글쓰기를 병행했으며, 1965년 첫 소설 『사물들』로 르노도상을 탔다.
그 후 1960년대 전위 문학의 첨단에 섰던 실험 문학 그룹 울리포(OuLiPo)에 가입했다. 울리포의 실험 정신은 이후 페렉의 전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데, 그중에서도 알파벳 e를 빼고 쓴 소설 『실종』(1970), 그 후로 3년 뒤에 모음 중 e만 써서 써낸 소설 『돌아오는 사람들』(1973)이 대표적이다. 1978년 거대한 퍼즐을 방불케 하는 소설 『인생 사용법』으로 메디치상을 타며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지만 1982년 45세에 폐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작품마다 완벽히 새로운 형식의 시도를 감행해 길지 않은 생 동안 자신만의 분명한 문학 세계를 구축한 페렉은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마당 구석의 어떤 크롬 도금 자전거를 말하는 거니?』(1966), 『공간의 종류』(1974), 『W 혹은 유년기의 추억』(1975), 『알파벳』(1976), 『나는 기억한다』(1978), 사후에 출간된 『어느 파리 지역의 완벽한 묘사 시도』(1982), 『생각하기/분류하기』(1985), 『53일』(1989) 등 40여 편이 있다.

조르주 페렉의 작품 목록

1)「사물들. 60년대 이야기」, 1965

2)「웬 크롬도금된 핸들이 달린 작은 자전거가 마당 모퉁이에?」, 1966.

3)「잠자는 남자」, 1967.

4)「사라짐, 소설」, 1969.

5)「Les revenentes, 텍스트」, 1972.

6)「어두운 상점, 124개의 꿈」, 1973.

7)「공감의 종류」, 1974.

8)「W 혹은 유년기의 추억」, 1969∼1970.

9)「삶 용법」, 1978.

10)「조르주 페렉의 십자 말풀이」, 1979.

11)「진열실. 어떤 한 그림의 역사」, 1979.

12)「엘리스 섬의 이야기. 유랑과 희망의 스토리」, 1980.

13)「울타리 그리고 다른 시들」, 1980.

14)「매혹된 눈」, 1981.

15)「생각하다/분류하다」, 1985.

16)「십자말풀이, II」, 1986.

17)「금속들」, 1988.

18)「쉰셋 날들, 소설」, 1989.

19)「보통보다 못한 것」, 1989.

20)「맹세」, 1989.

21)「나 태어났다」, 1990.

 

Georges Perec, pt. 1

Georges Perec, pt. 2

The Book Files: Georges Perec's A Vo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