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of Ephesus, BC 540?~BC 480?)

기원전 540년경 소아시아의 서쪽 해안 이오니아(Ionia) 지방에 세워진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 에페소스(Ephesos, ?φεσο?) 출신이다. 기원전 6세기 에페소스를 포함한 서부 연안 일대는 교역지로 명성이 높았다. 근동, 아프리카, 그리스 본토, 이탈리아 사이에서 생산된 다양한 물품과 사상들이 이 지역 십여 개의 도시들에 모였다가 서로 교환되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고향인 에페소스는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 숭배가 특히 융성했던 곳으로 고대 그리스와 동방의 종교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지역적 시대적 배경은 훗날 그의 사상에도 영향을 끼쳤다.

헤라클레이토스 자신이 직접 써 아르테미스 신전에 바쳤다고 하는 「자연에 대하여(On Nature)」는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삶이나 철학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 대부분은 후대의 것이거나 단편적이다. 남아있는 것들 중 가장 많은 정보가 담겨 있는 사료는 3세기 전반에 활약한 그리스 사상가이자 전기(傳記) 작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ërtius)의 저서 「고대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Lives and Opinions of Eminent Philosophers)」이다. 그러나 이 또한 헤라클레이토스 사망 수세기 이후에 진술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진실과 허구의 정보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던 헬레니즘 시대 위인전기의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부 내용은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디오게네스에 따르면 헤라클레이토스는 에페소스의 저명한 귀족집안에서 브로손(Blosôn) 혹은 헤라콘(Herakôn)의 아들로 태어났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홀로 공부하고 스스로를 탐구해 철학적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크세노파네스(Xenophanes of Colophon)의 제자였다는 설도 있으나 불분명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고독을 즐겼으며 선대 사상가들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또한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기이한 행동과 수수께끼 같은 심오한 말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로부터 ‘스코테이노스(Skoteinós, 어두운 사람)’라 불렸다. 한편 디오게네스의 진술에는 아테네의 그리스 철학자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가 헤라클레이토스가 동생에게 가문을 물려준 것을 들어 그를 매우 고매한 사람이라고 평가했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신의 친구인 헤르모도로스(Hermodoros)가 국외로 추방되자 ‘가장 쓸모 있는 인물을 내쫓은 에페소스의 성년들은 모두 목을 매고 죽어버려야 한다. 미성년자들이 정치를 하는 게 더 낫겠다.’고 에페소스 시민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세상을 혐오하여 산속에서 풀이나 나뭇잎을 먹으며 은둔생활을 했다. 이후 그는 온 몸이 부풀어 오르는 수종증(水腫症)에 걸려 도시로 돌아왔다. 그러나 홍수를 가뭄으로 바꿀 수 있냐는 질문에 의사들이 대답을 못하자 치료를 거부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쇠똥을 몸에 발라 햇볕에 말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치료법으로 체내의 수분을 증발시키려 했다. 이 방법으로 완치가 되었는지 여부는 문헌마다 의견이 다르며 60세에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진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사상과 의의: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개념은 ‘대립물의 충돌과 조화,’ ‘다원성과 통일성의 긴밀한 관계,’ ‘로고스(Logos)’이다. 이 셋은 별도의 것이 아니라 그의 사상을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었다.

밀레토스학파(Milesian school)와 달리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의 기원을 ‘불’로 생각했다. 이 근원적인 불은 절도 있게 타올랐다 꺼지는 것을 영원히 반복한다. 그리고 타오르다 사그라지는 불꽃을 따라 일정한 주기로 대립하는 만물이 생겨나고 사라지게 된다. 그는 이 과정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의 사상에 따르면 불은 변화하여 공기, 바람, 물, 흙, 영혼 등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오르막의 길에서는 불이 건조해져 흙이 물로 바뀌고, 증발로 인해 다시 공기나 다른 것들이 만들어진다. 바다의 증발은 순수하고 밝아 별이나 여름을 만드는 반면 땅의 증발은 습하고 탁한 어둠과 겨울을 생성한다. 한편 내리막의 길에서는 불이 짙어져 습한 물이 되고, 이것이 더욱 농축되어 흙으로 바뀐다. 즉 만물은 불로부터 만들어진 대립물들의 집합체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물은 생성과 소멸, 대립과 투쟁 안에서 서로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는데,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를 ‘불은 공기의 죽음으로 살고, 공기는 불의 죽음으로 산다. 물은 흙의 죽음으로 살고, 흙은 물의 죽음으로 산다.’, ‘싸움은 만물의 아버지이며 만물의 왕이다’, ‘건강을 달콤하게 만드는 것은 병이며 배부름을 달콤하게 만드는 것은 배고픔이다’이라는 말들로 표현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불은 물질 이상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불은 근원적인 에너지이자 신적 요소와 인간의 영혼을 내포한다. 또한 불은 대립된 만물들이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고 종국에는 다시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후대 철학자들의 기록에 따르면 헤라클레이토스는 다원성과 통일성의 긴밀한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은 낮이자 밤이며, 겨울이자 여름이고, 전쟁과 평화이며, 포만감이자 배고픔이다.’, ‘결합시킬 대립물 없다면 통일도 없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동일하다.’, ‘선과 악은 하나다.’, ‘삶과 죽음, 깨어남과 잠듦, 젊음과 늙음은 같은 것이다.’

로고스는 대립물의 충돌과 조화를 중시하고 다원성과 통일성이 궁극에는 하나임을 모색하려 한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의 핵심이다. 그가 했다고 전해지는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태양은 날마다 새롭다’ 등의 격언들은 만물은 흘러가고 정지된 것은 없다는 그의 사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다양하게 변화하는 만물의 뒤에서 이들의 생성과 소멸을 이끄는 세계법칙(우주의 섭리), 즉 만물을 지배하는 세계이성 ‘로고스’에 주목했다. 그는 로고스의 영원한 섭리와 법칙에 따라 세상만물이 대립․투쟁․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근원에서 태어나고 다시 돌아가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신에게 있어 모든 것은 정의롭고 올바르지만 인간은 어떤 것은 정의롭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은 근원법칙 로고스와 이를 기반으로 표출된 만물의 다양성을 정의한 말로 평가받고 있다.

우주론, 정치론, 신학론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저작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후대 문헌들을 통해 전해진 그의 말과 사상은 고대와 중세, 근대는 물론 현재까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하는 만물이란 헤라클레이토스의 가르침에 주목하고 때론 이를 반박했다. 중세 신학자들은 그의 로고스 사상을 기독교적 개념과 결합시켰다. 대립과 통일, 투쟁으로 인한 만물의 탄생 등은 헤겔, 니체, 다윈의 사상에서도 드러난다. 오늘날 헤라클레이토스의 말들은 표면적으로는 난해하지만 그 안에는 깊은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