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근옥 시집 「감을 우리며」 서문(시문학사, 1988)


문덕수

(시인, 예술원 회원, 전문화예술진흥원장)


朱根玉 시인의 작품에 대해서는 평론가 李崇源 교수의 권말 평설에서 다 말하고 있으므로 새삼스럽게 내가 다시 이러니 저러니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내 나름대로의 느낌을 덧붙이는 것도, 의의가 있을 듯싶다.


군중 속에서

장미꽃 입에 물고

삽사리도 꼬리쳐


“유세장에서”라는 시다. 이 시집에는 2행, 4행 등의 단시도 있으나, 3행의 단시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다. 내용, 구조, 수사, 형식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관심을 끌고 재미도 있어 시험 삼아 세어보았더니, 전부 109편, 그 중에서 3행시가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자수를 세어 본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지 모르나, 어쨌든 내킨 김에 세어보았더니, 16자에서 30자 내외이고, 그 중에서도 21자와 24자로 된 것이 가장 많다. 일본의 하이쿠(俳句)는 5․7․5의 3구가 17자이고, 와카(和歌)는 5구 31자인데, 이러한 일본의 단시형을 연상하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 있고, 또 시조의 3장형과 비슷하나 자수 면에서 시조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여준다. 아마도 朱根玉은 완벽한 정형성을 갖춘 새로운 3행시의 형식을 한국시에서 확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나는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새로 뚫린 창이런가

달력 떼어낸 자리에

감나무 한 가지

         ―窓

  

알밤 깨물다가

어금니 쓰레기통에

버리고 뒤돌아보네

         ―어금니


사립문 살며시 밀자

너와지붕 짓밟고 서서

살구꽃은 포효하느니

         ―살구꽃


간장을 달이며

짭짜롬 맛이 드느니

아내의 새끼손가락

         ―간장


이 시집에서는 이와 같은 3행시들이 수두룩하게 실려 있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서 朱根玉의 새로운 가능성, 즉 3행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점쳐본다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정형성의 가능성 외에도 다음과 같은 특색도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표현의 간결과 생략, 집중과 응결의 미학이 있다. 3행에 몇 구 안 되는 형식적 제약과 통제에서 오는 당연한 구조상의 특징이다. 둘째, 言外의 여운과 여백이라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은 따스한 인간미, 농촌이나 전원의 평화스러운 정경, 또는 행동이 당돌하게 충돌하는 순간적 화해가 있다. 이 경우의 기발, 기지, 유머 ―이러한 것도 도외시할 수 없는 귀중한 목록이다.

여기서는 이런 정도로써 끝내기로 한다. 우리는 朱根玉 시인, 열심히 공부하고 땀 많이 흘려 3행 정형시의 가능성을 성공적으로 실현하기를 기대해 본다.    


                                                  무진년 초가을